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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내 장르 다양성은 왜 보장되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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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페이지 스타일의 로맨스 판타지 <날 가져요>

(글 그림 원펀치래빗. 원작 로즈빈. 네이버웹툰 연재)

처음 네이버웹툰에 등장하자 부정적인 댓글이 주를 이뤘다.

 

 

네트워크 외부성에 의한 유인 효과가 특정 장르에 대한 일종의 부익부 빈익빈으로 이어진다면,

결국 이 시장은 최대 다수 소비자의 최대 만족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흥미로운 장면 하나. 지난해 11, 네이버웹툰에 동명의 인기 로맨스 판타지 웹소설을 웹툰으로 이식한 <날 가져요>

첫 화가 올라왔을 때,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베스트 댓글은 다음과 같다. ‘네이버가 슬슬 다른 플랫폼 유행을

따라가는가 보다. (중략) 카카오페이지나 레진처럼 변하고 있음.’ 세 번째로 많은 추천을 받은 댓글도 비슷하다.

카카오 느낌 난다. 그림체도 네이버 느낌 안 나고, 아쉽다.’ 다섯 번째로 많은 추천을 받은 댓글 역시

카카오페이지는 카카오페이지고, 네이버는 네이버웹툰만의 스타일이 좋았는데.’ 좀 더 흥미로운 건 그다음

베스트 댓글이다. ‘네이버 느낌의 그림체가 아니야. 점점 트렌드를 따라가는 건가.’

 

흥미로운 장면 둘. 그보다 좀 더 이전인 2016, 한 개그 장르 만화가는 당시 네이버웹툰 정식 연재가 결정된

<연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미 <프리드로우><연애혁명>, <외모지상주의>가 있는데 굳이 <연놈>까지

정식 연재 들어가는 건 좀 심하지 않나 싶더라고요.”

 

이 두 장면은 각각의 의미가 있지만, 또한 그 의미가 교차할 때 새로운 의미를 드러낸다. 전자의 경우,

네이버웹툰 스타일과 카카오페이지 스타일의 차이에 대한 꽤 직관적인 대중의 인식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일부 의견이라 해도, 각 플랫폼이 하나의 장르로 획일화되기보단 각 플랫폼의 개성이 남아 있는 편이

낫다는 주장에는 장르 획일화에 대한 나름의 반발감이 내재되어 있다. 후자의 장면도 일견 흡사한 주장처럼

보인다. 이미 좀 노는’ 10대를 그리는 작품들이 상당수 존재하고 또 수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비슷한 장르의 작품을 더 수급하는 것은 일종의 장르 획일화가 아닌가? 하지만 이 두 장면을 겹쳐 보자.

카카오페이지 스타일(이자 트렌드)과 구분되는 소위 네이버웹툰 스타일이라는 것이 존재하며, 또한 그것이

지켜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다양성에 대한 요청이라고 하기엔, 이미 그 네이버웹툰 스타일이라는 것

자체가 플랫폼 내부 다양성을 훼손하며 만들어진 일종의 획일성은 아닌가? 즉 카카오페이지는 로맨스 판타지,

네이버는 10대 중심의 학원물이라고 거칠게 요약했을 때, 그러한 플랫폼의 스타일은 이미 비슷한

다른 작품이 많은 상황에서 굳이 <연놈>까지 정식 연재 들어가는상황을 통해 만들어진 것은 아닌가?

 

<날 가져요>에 대해 비판적 댓글을 달았던 독자들이 잘못된 이중 잣대를 적용했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오히려 플랫폼을 지배하는 특정 장르에 대한 강한 충성도를 지니고 그에 대한 획일화에는 별다른 의심을 품지

않던 독자들조차, 해당 장르의 특권적 기반이 흔들린다고 생각될 때(물론 <외모지상주의><연애혁명> 등이

여전히 압도적인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떠올리면 이것은 엄살에 가깝다) 장르 다양성이라는 직관적

당위에 기댄다고 보는 게 맞다. 다시 말해,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작품을 즐기기 위해선, 다른 스타일의 작품을

즐길 수 있는 타인의 권리를 어느 정도 인정해줘야 한다는 것을 희미하게나마 자각할 계기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앞서의 개그 만화가는 네이버의 고유성을 이유로 <날 가져요> 게재를 비판하는 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주장할 수 있다. ‘당신들이 네이버웹툰만의 개성이 사라지지 않길 바란다면, 네이버웹툰 안에서 다른 장르들이

자생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해서도 동의해야 한다.

 

이러한 가상적 대화는 말 그대로 가상이지만, 웹툰 플랫폼 내의 장르 다양성 문제에 대해 접근할 중요한 모델을

제시한다. 장르 다양성은 어떤 외부적 관점에 의해 타율적으로 부과되는 의무(가령 정부 기관의 명령)가 아니라,

문화 시장 안에서 장르를 즐기고 소비하는 소비자들의 권리가 정당하게 충족되기 위해 각 시장 참여자들이

서로 인정해야 할 최소 규범에 가깝다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장르를 소비할 권리를 위해, 당신이 원하는 장르를

소비할 권리를 인정하겠다정도의 명제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플랫폼의 공급과 독자의 만족이 균형을 이룰 것이라는 시장 만능주의 관점과는 다르다. 네이버웹툰의 학원물

획일화가 증명하듯, ‘보이지 않는 손은 독자가 몰리는 장르가 플랫폼을 점령할 때까지 (역설적으로) 손을 놓고 있다.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은 결코 보이지 않는 손에 모든 걸 맡겨 놓는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해 왜 인기 장르에의 편중을 공정한 시장 환경이라 보기 어려운지 논증하고(1), 이러한 환경에서는

결코 최대 다수의 최대 만족이 만들어질 수 없으며(2), 장르 다양성 확보를 위한 여러 정책적 보완만이 시장

왜곡을 줄일 수 있다는 결론을 도출하도록 하겠다(3). 여기엔 실제 연재 중인 작품들의 완성도에 대한 비판적

논의들이 보론으로 추가되어야겠지만, 그것은 이미 존재하거나 새롭게 쓸 비평들의 논의 맥락에 기대한다.

 

1

앞서 <연놈>의 사례처럼 웹툰 플랫폼이 인기 있는 장르를 먼저 고려하는 것은 시장 참여자로서 충분히

합리적인 결정이다. 더 많은 독자(이자 소비자)가 원하는 재화를 먼저 공급할 때 독자의 만족도도 올라가고,

사업자로서의 플랫폼 역시 더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 필연적으로 네트워크 외부성

(network externality)’이 개입하면서 시장은 왜곡된다. 네트워크 외부성이란, 특정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가

많아질수록 해당 상품이 효용 가치가 높은 것으로 인식되어. 그 가치가 더욱 높아지는 현상을 뜻한다. 가령 특정

브랜드 피로회복제의 인기가 높으면, 다른 소비자 역시 피로할 때 해당 피로회복제를 구매할 확률이 높아져서,

자연스럽게 그 브랜드의 시장 가치도 따라 올라간다.

 

이러한 편승 효과를 웹툰 장르에 대입해보자. 한국의 10대들이 학원물 장르를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이들 작품을 플랫폼이 다수 확보하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것을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다고만

보긴 어렵다. 네이버웹툰의 경우 조회 수로 요일별 작품을 줄 세우는 방식을 택하는데, 이 경우 장르나

작품에 대한 특별한 정보나 선호가 없는 신규 독자는 요일 수위권을 차지하는 <여신강림>, <연애혁명>,

<외모지상주의> 등을 선택할 확률이 훨씬 높다. 이러한 네트워크 외부성은 작품 섬네일에 유료 독자 수를

표기해 독자를 유인하는 카카오페이지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소비자는 좋은 재화를 찾을 때,

자원을 투입하기보다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재화를 선택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유인은 독자에게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특정 장르의 인기가 높고 유료 수익이 높을 때, 신구 작가군

역시 자신의 재능을 해당 장르에 집중할 확률이 높아진다. 실제로 네이버웹툰 베스트 도전에서 편집부의

프로듀싱을 제공하는 포텐 UP!’에 최근 선정된 작품은 대부분 <9등급 뒤집기>, <^-^(캐럿하이픈캐럿)>,

<루커피쳐>처럼 10대 후반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작품들이다. 새로이 유입되는 독자들도 특정 장르에 몰리고,

재능 있는 작가들도 특정 장르에 몰리게 된다면 두 가지의 시장 왜곡이 벌어진다.

 

먼저, 인기 작품과 장르에 독자가 몰리는 것이 해당 작품에 대한 독자 만족을 그대로 반영해주지 못한다.

즉 정말로 해당 작품에 만족해서 보는 것인지, 단순히 인기 있어서 그걸 따라 보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또한 특정 장르 신작이 많아지는 것이 작가들이 자신의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한 것인지, 재능 여부와

관계없이 인기를 좇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즉 아무리 시장이 활성화되어도, 소비자인 독자가 충분히 만족하는지,

또한 공급자인 작가가 충분히 좋은 작품을 제공하는지 알 수 없다. 인기 장르가 인기가 있어서 인기를 얻는

기괴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면, 작품의 실제 재미와 소비자의 실제 선호에 의한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하다.

 

2

네트워크 외부성에 의한 유인 효과가 특정 장르에 대한 일종의 부익부 빈익빈으로 이어진다면, 결국 이 시장은

최대 다수 소비자의 최대 만족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일차적으로 현재의 웹툰 정렬 방식과 추천 방식으론

대세 장르 외의 장르에서 높은 완성도를 보이는 작품을 찾아보기 매우 힘들다. 이런 점이 요즘 들어

더더욱 큐레이션 서비스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이유다(10~15p, 커버스토리 2 참조).

 

하지만 이 문제의식조차 여전히 좋은 작품이 수급되고 있다는 것을 전제한 것이다. 정말 큰 문제는 앞서

말한 것처럼 작품의 실제 완성도와 독자의 실제 만족을 읽어낼 수 없는 왜곡된 시장에서는 작품들의 질적

저하 역시 결과적으로 따라오게 된다는 것이다.

 

개별 소비자들이 자신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 부족한 게 무엇인지 시장을 향해 제대로 된

신호를 보내기 어려워진 구조에서는, 작가들 역시 독자 니즈를 분석하기보다는 대세 장르를 따르기 마련이다.

이 경우 최상의 시나리오는 각각의 작가가 자기만의 재능과 개성을 담아낸 작품을 인기 장르 안에서

만들어 내면서 인기와 효용 모두 크게 증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토록 수많은 작가가 비슷한 배경을

공유하는 특정 장르 안에서 충분히 변별력 있는 작품을 만들어낼 거라 예상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또 있다. 각각의 작가가 특정 장르에만 매진할 때, 그 작가들이 실제로 더 잘 만들 수 있는 작품이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A 장르에 최적화된 재능과 자원을 지닌 작가가 대세를 따라 B 장르에

도전한다면 그것은 이미 효율적이지 못하다.

 

많은 이들이 조석, 이말년, 가스파드, 정다정 이후 왜 더는 한 시기를 지배하는 에피소드 개그 만화가

등장하지 않는지 의아해한다(장편 연재라는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기안84의 웃음 코드는 이들과 같이

묶기 어렵다). 더는 개그가 메인스트림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은 반쪽짜리 설명이다. 개그가 메인스트림이

아니게 될 때, 개그에 대한 재능이 시장에 충분히 흡수되지 못한다고 보는 게 더 적확하다.

 

정뱅의 <암흑도시>처럼 탁월한 작품도 있었지만, 네이버웹툰 초기 개그물 정서를 억지로 카피하려다 센스도

만듦새도 혹평을 받은 <공감.jpg> 같은 사례가 먼저 떠오른다. 조석의 <마음의 소리>는 여전히 웃기고, 김칸비의

<돼지우리>는 여전히 섬뜩하지만 아직도 개그를 보려면 조석, 스릴러를 보려면 김칸비만을 찾아야 하는 상황은

결코 후속 작가군의 재능 부족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재능의 투입 자체가 최적의 효율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최적의 결과물을 기대할 수는 없으며, 이것이 소비자의 최대 만족으로 이어질 수 없는 것 역시 당연하다.

 

3

12를 통해 시장에 의한 장르 편중화가 총 조회 수의 증가와는 별개로 시장 내 소비자들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처음에 이야기한 내가 원하는 장르를 보기 위해 타인이 원하는 장르를 보장할 권리

공정한 시장의 관점에서도 정당화된다. 선호 충족의 권리와 소비자의 권리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장르 다양성

추구는 비인기 장르 작가와 독자에 대한 시혜적 배려가 아닌, 시장 건전성을 위한 필수적이고 대체 불가능한 방법이다.

이것을 웹툰 플랫폼 사업의 주요 공리로 본다면 이로부터 몇 가지 제도적 제언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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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웹툰 요일별 순위. <외모지상주의><연애혁명>,

<연놈>, <여신강림>, <프리드로우>, <랜덤 채팅의 그녀>

학원물이 절대 강세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플랫폼은 어떤 장르에 대해서든 점유율 상한선을 긋는 방식으로 장르 편중을 막을 수 있다.

 

둘째, 시장에 의해 개별 창작자 및 제작사의 특정 장르 쏠림 현상이 심해질수록 기타 장르에 대한 수급을 위해

노력할 수 있다. 실제로 카카오페이지 황현수 부사장은 <지금, 만화> 3호와의 인터뷰에서 어떤 분야에서든

콘텐츠가 편중되면 질적 저하가 일어나고 사양 산업이 된다매출이 높은 작품 외에 부족한 카테고리에

대해 제작 투자를 직접 하거나 제작 요청을 하기도 한다고 밝혔다(42~49p, 황현수 부사장 인터뷰 참조).

 

셋째, 앞서 이야기한 큐레이션 역시 중요한데, 자신이 선호하는 재화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질수록 네트워크 외부성

역시 줄어들게 되며, 이로 인해 자신의 선호를 깨닫고, 적극적으로 소비할 기회도 더 많이 얻게 된다.

 

넷째, 작가들에게 연재 기간의 하한선을 비롯해 어느 정도의 안전망을 제공해 실패를 각오하고 모험할 기회를

줄 수 있어야 한다. 창작자가 대세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최선을 다하는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될 때 비로소 콘텐츠 시장은 특정한 선입관에 지배당하지 않고, 재미 대 재미, 퀄리티 대 퀄리티,

참신함 대 참신함이 맞부딪히는 공정한 경쟁의 장이 될 수 있다.

 

더 탄탄하고 더 높은 창작 윤리를 보여주고 더 참신한 작품들에 대해 제대로 된 시장 평가가 이뤄지고,

그것이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경쟁 압력으로 이어지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시장에 기대하던

보이지 않는 손의 인도이지 않을까?



*<지금, 만화> 제1호~제5호는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PDF파일을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