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스크랩]
배신의 단맛! <첩보의 별>_ ‘<지금, 만화> 만화 비평 대공모전’ 대상 당선작(자유 비평)

<첩보의 별>은 웹툰이라는 형식 자체를 새삼스럽게 전경화 한다.

브레히트의 말을 빌리자면, 작품의 과잉된 형식성은 수용자가

허구적인 체험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각인시킨다.

 

 

여기 현실과 허구의 세계를 동시에 위협하는 순수한 병맛웹툰이 있다(‘병맛은 비하 표현 논란이 있는 단어지만

개그 웹툰의 하위 장르로서 고유명사처럼 통용되기에 여기선 원문을 살린다 -편집자 주). 주인공은 허언증

환자이며, 동료는 배신의 달인이다. 그들은 은평구 구파발에 위치한 30년 전통의 원조 CIA(?)에서 근무하고 있다.

벌써 궁금한 게 많겠지만 물음표는 잠시 넣어두자. <첩보의 별>의 기술(記述)은 날것 그대로의 의식의 흐름

따른다. 요즘 표현을 따르면 아무 말이라 해도 좋으리라. 그러나 현실에 대한 불온함이 가득한 그곳엔

기묘한 카타르시스가 존재한다.

 

첩보원이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를까? 음모와 배신, 치열한 심리전? 인간병기로서의 기상천외한 능력?

극복의 대상으로서 옴 파탈 혹은 팜 파탈과의 관계? 첩보 장르 속 첩보원의 이야기는 하드보일드와 로맨스의

장르 관습을 넘나들곤 한다. <첩보의 별>에서 그런 첩보원들의 세계를 기대했다면, 미안하지만 당신은 이미

함정에 빠졌다. 만화의 형식과 내용 그리고 그것을 바라는 독자의 기대감을 포함해, <첩보의 별>은 만화와

독자를 둘러싼 안과 밖 세계의 기대를 모두 배신한다.

 

<첩보의 별>24살의 평범한(?) 고등학생 설전설이 첩보원인 사돈 청년 Mr.물망초의 죽음을 계기로 첩보원이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사실 <첩보의 별>의 서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앞서 말했듯

아무 말에 가까울 정도로 의식의 흐름을 따르기 때문이다. 사건의 인과율은 제멋대로 뒤집히며, 언어와

상식은 제 기능을 잃고 모순으로 점철된다.

  

 

  af5bf3d359b32d173dffdab18de67c59.png

<첩보의 별> (글 이상신, 그림 국중록. 네이버웹툰 연재)

 

 

이를테면, <첩보의 별>에서 여고생은 전투력 측정의 기준이다. 한 명의 여고생은 두 명의 특수부대원과 동급이며,

세 명의 여고생은 전차와 맞먹는다. 지나가던 여고생이 아저씨를 성희롱하는 것은 예삿일이다. 이상신과

국중록은 오로지 현실의 관습과 관성을 부수는 것으로 만화를 추동한다. 여기엔 어떤 극단적인 형식 실험이

존재한다. 이 실험은 관습화된 온갖 기대를 무너뜨리는 유쾌한 배신으로서 독자의 오감을 자극한다.

 

만화는 인간의 유희적 상상력을 담는 데 유리한 매체다. 웹툰은 다양한 밈(meme)의 생산과 수용을 견인하는

주요한 경로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이른바 병맛웹툰 역시 더는 소수 독자의 전유물로 폄하할 수 없는

파급력을 보인다. 이슈에 대한 즉각적 반응과 각종 문화 코드와의 결속은 병맛웹툰의 주요한 서사 전략이다.

만화적 병맛은 패러디의 문법을 통해 역으로 병맛같은 현실을 야유하곤 한다. 무가치해 보이는 그들의

만화에는 어떤 음험한 전복성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한 많은 병맛웹툰들이 동시대적인 문화 코드를 가로질렀다면, <첩보의 별>은 좀 더 보편적인 인식의

토대를 헤집는다. 일반적인 병맛웹툰의 전개가 ---이라면 <첩보의 별>---의 구도에

가깝다. 이야기에는 어떤 목표도 표상되지 않는다. 나타나는 것은 그저 만화적 허구성과 현실의 비틀림 그 자체이다.

 

극단적인 만화 문법은 수용자의 상식을 조롱한다. 말하자면, <첩보의 별>은 웹툰이라는 형식 자체를 새삼스럽게 전경화 한다.

브레히트의 말을 빌리자면, 작품의 과잉된 형식성은 수용자가 허구적인 체험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각인시킨다.

 

<첩보의 별>에서 허구성에 대한 인식은 반성적인 성찰로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놀이 체험을 만든다.

그 유희는 만화와 독자의 적극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이뤄진다. 예컨대, 위기의 순간 주인공은 비밀병기인 수신기

들어 조언을 구한다. ‘발신자는 댓글을 쓰는 독자들이다. 만화는 다음 화에서 독자의 의견을 반영해 사건을 전개한다.

이러한 전개 방식 때문에 급기야는 연재 3주 만에 주인공이 교체되기도 한다. 아쉽게도 이 재기발랄한 아이디어는

장난으로 연재 종료를 요구하는 댓글이 도배되면서 어물쩍 사라졌다. 대신 시즌 2에서의 컷툰형식으로의

전환은 장면마다 적극적으로 딴죽을 걸고 싶은 독자들의 바람을 반영했다. 독자들의 반응은 열성적이었다.

 

매컷 댓글 창마다 누군가는 설전설처럼 허풍을 떨었고, 누군가는 진솔한 감정을 표현했다. 댓글 창은 독자들의

놀이터였다. 컷툰 형식은 좌충우돌하는 상황을 연출하는 데도 도움을 줬다. 컷을 넘길 때마다 배신을 거듭하는

양하치(주인공의 동료)와 뜬금없이 등장하는 발리우드식 뮤지컬 연출은 이 작품의 묘미를 적확하게 드러낸다.

 

이처럼 <첩보의 별>의 극단적인 만화 문법은 수용자를 일종의 카니발적인 체험으로 이끈다. 이를테면 <첩보의 별>

서사 무대에서 나타나는 극단적인 부조리는 상식, , 언어 등에 대한 의미를 교란하며 사회의 고정 관념을

끊임없이 무너뜨린다. 독자는 반전을 예측하는 동시에 또한 이야기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기대를 배신할지 모순적인

기대감에 찬 상태로 이토록 혼란스러운 이야기를 즐긴다. 즉 이야기도 혼란스럽지만 이를 수용하는 방식 역시

혼란스럽다. 그리고 독자는 이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이를 통해 ---의 구도에서 파생된 부조리한 감정은

긍정적으로 해소된다. <첩보의 별>의 쾌감은 현실 세계를 향한 허구적 세계의 파괴적 창조 과정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런 논의의 연장선에서 본다면 <첩보의 별>의 마지막 에피소드는 각별한 시사점을 남긴다. 바이러스 Vz-2

의해 사람들은 허구적인 세계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인식을 얻게 된다. 설전설의 허언은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사람들은

상식의 세계에 적응한다. 설전설은 세계를 허구의 세계로 되돌리기 위해 분투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주변의 비웃음과

냉대이다. 현실과 허구의 낙차가 드러날 때 설전설은 전설적 첩보 요원이 아닌 잉여 인간으로, ‘사회의 낙오자

규정된다. 이상신과 국중록은 그동안 애써 쌓아왔던 서사 무대의 관습마저 폭파한다.

 

여기서 노출되는 설전설의 지질함과 현실의 냉엄함은 우리가 지나온, 혹은 현재 진행 중인 자화상을 비추기도

한다. 압도적인 현실에 맞서는 허세, 자기합리화의 욕망. 과잉된 현시욕. 근거 없는 낙관주의, 설전설은 일종의

불온한 욕망의 집합체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행위가 무조건 수용자에게 대리만족을 견인했다고 볼 수는 없다.

마지막 에피소드 이전까지 댓글은 설전설에 대한 조소로 가득했다. 그러나 밉살스러운 설전설이 현실 세계에서

절망했을 때 발생하는 기묘한 연민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설전설로 대표되는, 허구의 세계를 포기하는 순간 좌초될 운명을 우리는 안다. 허구적인 세계에 대한 바람은

단순히 자폐적인 도피를 뜻하지 않는다. 현실의 뒤통수를 때리는 통렬한 경험은 우리의 오감을 전율시키며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지 않는가?

 

극단적으로 새로움을 추구하는 대중예술은 매력을 잃기 쉽다. 형식과 내용의 붕괴는 독자들에게 반감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첩보의 별>의 실험은 독자의 욕망을 즉각적으로 강타한다. 이러한 전복에 대한

유희적인 수용은 허무한 감정 소모로만 끝나지 않는다.

 

극한의 부조리는 현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이끌며,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구속력을 더 잘 파악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첩보의 별>에 대한 이러한 탐색이 자칫 감각적인 희열을 즐기는 데 방해물이 될지도

모르겠다. 바라건대 이 짧은 감상을 딛고 상식을 파괴하는 최고의 배신을 순수하게 만끽하기 바란다.

 

‘<지금, 만화> 만화 비평 대공모전의 모든 당선작은 한국콘텐츠

진흥원 홈페이지(www.kocca.kr)에서 볼 수 있습니다.



*<지금, 만화> 제1호~제5호는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PDF파일을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