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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35년차 만화가의, 여전히 가슴 뛰는 연재의 기쁨

창작의 진짜 의미는 이런 거겠지. 내가 죽어도 살아있는, 내 작품 속의 주인공.

그 생명을 그려내는 시간이 내 인생에서 무엇보다 소중하다.



요즘 나는 작품을 할 때 주로 팟캐스트나 유튜브 방송을 듣는다. 팟캐스트와 유튜브는 참 좋은

매체인 듯하다. 듣기만 해도 여러 가지를 알게 되니까 말이다. 라디오의 또 다른 버전이다. 알고

싶은 정보가 무수히 많아서, 마치 재미있는 야시장 구경을 하는 느낌이다. 방구석에 앉아서도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여러 지식을 알 수 있고, 일과 병행할 수 있어서 더더욱 좋다. 내가 모르고 살았던

수많은 사람의 생각을 듣고, 배운다. 그리고 감동한다.

 

어제도 한 유튜브 방송에서 이런 얘기를 들었다.

요즘 아이들의 장래희망은 명사이다. 검사, 변호사, 공무원, 스타 같은. 왜 그 앞에 관형절이 붙지 않는가?

어떠한 검사가, 어떠한 변호사가, 어떠한 공무원이, 어떠한 스타가 되고 싶은지 관형절이 빠져있다.”

마찬가지로 요새 웹툰 작가가 되고 싶다는 장래 희망을 가진, 어린 친구들을 주변에서 곧잘 본다.

나는 그 앞에 숨겨진 관형절을 안다. ‘나는 (인기 있고, 돈 잘 버는) 웹툰 작가가 되고 싶다가 아닐까?

 

만화가의 꿈을 키워가던 나에겐 확실한 관형절이 있었다.

나는 ‘10년 후에도 내 작품이 읽히는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한 번 읽고 휙 던져지고 잊히는 만화를

그리는 만화가가 되고 싶지 않았으니까. 완벽주의는 아니지만, 남들도 다 할 수 있는 것을 해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었다. 보고 또 봐도 다시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을 그리고 싶었다.

그런데 그건매우 힘들지도 모를 작가의 길이었다.

물론 데뷔 당시의 내 희망은 그냥만화가였다. 내 만화를 보여주고, 그 돈으로 먹고사는 직업. 그런

정도의 환상만 가지고 만화를 시작했다. 그때의 내 식견은 고작 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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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야> (글 그림 신일숙. 카카오페이지 연재)

 


그러다가 첫 작품인 <라이언의 왕녀>를 받아주는 출판사를 만났고 드디어 데뷔작을 출간하게

되었다. “한 달에 한 권을 그릴 수 있겠느냐?”는 출판사 측의 얘기를 듣고, 해보겠다고 했다. 한 달에

140페이지 분량 한 권을 그려야 한다니. 나는 그 불가능한 짓을 해야 했다. 날림 공사가 시작되었다.

한 달보다는 더 걸렸지만, 빠른 완결로 데뷔작을 출판사에 넘겼다. 그런데 그 후, 같은 출판사에서

출간 중이었던 김혜린 작가의 <북해의 별> 원고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 동안 밤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내가 돈을 벌기 위한 작가 생활을 시작했을 때,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누군가는 이토록 꼼꼼하게

한 컷 한 컷을 장인 정신으로 완성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몹시 부끄럽게 했다. 아니, 그저 부러웠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내가 진짜 그리고 싶었던 만화를.

 

누군가에게 내 작품이라고, 부끄럼 없이 신일숙이란 이름을 걸고 내놓을 수 있는 만화. 내 시간과 정열이

여기 있노라고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작품으로서의 만화. 원고료의 문제,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 자존감의 문제였고, 명예에 관련된 문제였다. 내 데뷔작은 그리하여 나의 가장 부끄러운 모습이 되었다.

그 뒤에 재출간하려고 전면 보수 작업을 시도했는데, 그건 이미 첫 작품의 모습이 아니었기에. 그저 부끄러운

모습을 감추려 했던 해프닝에 불과했다. 그 짓을 할 시간에 새 작품을 그렸어야 했다는 사실만 통감할 뿐이었다.

오랜 만화가 생활을 하면서도 나는 늘 내 첫 작품의 치욕을 잊지 않았다. 나의 첫 날림 공사의 악몽을.

 

그 뒤로도 석 달에 한 권을 그려내는 날들은 계속되었다. 정말 얼마 안 되는 원고료로 살아가야 했을 때도

내가 무엇을 그리고 있는가, 어떤 작품을 그리고 있는가만 생각했다. 남들이 돈을 얼마 벌었다든가,

한 달에 몇 권을 그리고 얼마를 벌었다는 얘기를 들어도, 부러워하긴 했지만 내 프라이드를 버린 적은 없었다.

이 세상에 신일숙은 나 하나뿐이다’, ‘나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보여 주겠다는 프라이드 말이다.

그렇게 10년 후에도 읽히는 작품을 그리겠다는 나의 만화가 상()을 더 확실하게 새겼다. 그건 아마

첫 작품의 대실패가 남긴 교훈을 잊지 않았기 때문일 거다.

 

 

얼마 전부터 웹툰 <카야> 연재를 카카오페이지에서 시작했다. 이 작품은 데뷔 후 꾸준히 구상했던

세 작품(<아르미안의 네 딸들>, <리니지>, <카야>)중 하나이다. <카야>를 시작하면서 생각했다.

이것이 내 마지막 장편 작품이 될 것이다라고.

나는 어느덧 50대 후반을 달리는 나이가 되었다. 이제 머지않아 체력이 받쳐주지 않아 더는 하드한

연재 활동을 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 전에 이 작품만은 꼭 완성을 시키고 싶다. 그런 욕심으로

<카야>를 시작했다. 그런데 참 놀랍다. 이 나이가 되어도 작품 하는 시간이 즐겁다. 가슴이 뛴다.

아무 잡생각 없이 그저 작품만을 생각하며 몰두하는 시간이 즐겁다. 그리는 게 즐겁다.

 

잡지 시절, 늘 시간에 쫓기며 즐겁다는 생각보단 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작품을 한 회 한 회 치열하게

마감했었다. 그러다 어깨 인대가 끊어지면서, 꽤 오랜 시간 만화에서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출판만화 시장의 극악한 상황에 보여줄 지면은 줄어들었는데, 나는 그마저 못 그리는 사정이

되었으니. 그렇게 하릴없는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웹툰의 시대가 왔다. 이러나저러나 만화는 죽지 않는구나. 어떻게든

어떤 모습으로든 다시 살아나는구나 싶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절망으로 손을 놓았던 시간을

보내서였을까? 다시 만화를 그리는 이 시간이 왜 이렇게 즐거운지!

 

그리고 또 놀랍다. 이 나이가 되어서 이미 굳을 대로 굳은 그림일 텐데. 요새 그림체가 또다시

변하고 있다. 지금도 그림체가 변할 수 있구나. 그렇다면 더 잘 그릴 수도 있겠구나. 왜 당연히

굳어졌다고 생각했지? 내가 받아들이는 만큼, 내가 멈춰있지 않는 만큼, 내 그림체는 점점 변해간다.

요즘 후배 작가들의 좋은 작품을 보면 막 감동이 인다. 막 자극도 받는다. 그러면서 나도 아직 더

할 수 있어!’라고 속으로 파이팅을 외친다. 오늘도 밤을 새워 또 콘티를 짜고, 그림을 그리고, 도움을

주는 어시스턴트들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한다. 잘못된 컬러 부분을 최종 수정하면서 마무리한다.

좋다. 행복하다.

 

출판 만화든, 웹툰이든, 뭐든 어떤가. 나는 다시 10년 후에도 읽힐 수 있게 내 작품 <카야>를 그린다.

노안이 와서 눈도 침침해지고, 몸도 여기저기 부실해졌지만, 내 작품은 착실히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내 주인공 시나는 별과 별 사이를 여행하고, 고민하고, 울고, 웃고. 그녀의 삶을 살 것이다.

창작의 진짜 의미는 이런 거겠지. 내가 죽어도 살아있는, 내 작품 속의 주인공. 그 생명을 그려내는

시간이 내 인생에서 무엇보다 소중하다.

그래서 이번 삶은, 아무래도 만화가로 죽어야 할 거 같다.

 

신일숙 | 만화가. 1984<라이언의 왕녀>로 데뷔. 대표작으로 <리니지>,

<아르마안의 네 딸들> 등이 있으며 현재 웹툰 <카야>를 카카오페이지에 연재 중.



*<지금, 만화> 제1호~제5호는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PDF파일을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