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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나’와 함께 성장한 ‘우리’ 이야기

내 삶을 응원해주고 나 자신을 사랑하라말해주는 삼봉 씨는 담임선생님,

우리 부모님보다 이미 어른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하는 나를 가장 잘 이해해주었다.

 

살다 보면아주 사소한 일이 엄청 심각한 문제처럼

느껴질 때가 있고, 혹은, 심각하게 평생을 고민한

걱정거리가 사실은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

- 하일권의 <삼봉이발소>

 

 

<삼봉이발소>가 연재될 당시 2006, 이 말을 그땐 믿지 않았다. 생일날 축하 문자를 보내지 않은 친구한테 토라져

사흘 내내 가슴 속 돌덩이가 들어앉아 있기도 했었던 날. 만점인 줄 알았던 지리 시험에서 결국 하나를 틀렸다는 걸

알게 된 이후 친구들한테 어떻게 이를 해명할지 고민했던 날. 학교라는 세계가 가장 거대해 보였던 나에게 그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은 언제나 깊고 무겁게 다가왔다.

 

늘 심각했고 고민 속에 살지 않은 날이 없었다. 당시 유행하던 순정만화와 학습만화 틈 사이에서 자란 내게

우연히 다가온 첫 웹툰 <삼봉이발소>는 그런 나를 처음으로 어른 대접해주었다. 누구나 행복해질 자격이 있다고

말하는 김삼봉 씨는 내 첫사랑이나 다름없었다. 마침 주인공이었던 평범한 여학생한테 잔뜩 감정이입을 해가며

연재 내내 삼봉 씨를 지켜봤다. 그는 어른들은 상상도 못할 무거운 내 고민을 너무나도 잘 들어주었다.

신이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그런 시련을 주는 건, 그 사람들이 그만큼의 시련을 이겨낼 힘이 있기 때문이라고

 

내 세계에서만큼은 내가 겪은 고민이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주변을 돌아보면 응석 부리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 차마 힘들다고 입을 열지 못할 때가 더러 있다. 10대 시절의 고민은 나중에 떠올려 보면

별 것 아닐 거라는 말, 너는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로 매도당하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내 삶을 응원해주고

자신을 사랑하라말해주는 삼봉 씨는 담임선생님이나 우리 부모님보다 이미 어른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한 나를

가장 잘 이해해주었다. <삼봉이발소>를 보면서 언제나 봉이 세 개 달린 그의 미용실에 들어가 앉아, 커다란

가위에 자신을 맡기고 머리를 커트하는 그들이 부러웠다. 그저 잘생기고 멋있는 캐릭터를 동경하는 게 아니었다.

생전 처음으로 마음을 위로받고 싶은 사람이 생겼던 거다. 그 이후로도 그의 꿈을 자주 꾸었다. 그는 언제나

내 머리를 다듬어 주며, 거울 속 나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첫사랑인 삼봉 씨가 있었다면, 또 다른 사랑 <입시명문사립 정글고등학교>도 있었다. 일명 정글고. 당시 학생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주위에 안 보는 사람을 찾기가 더 힘들었다. 전교 1등이지만 등교 시간만 되면 저승에서

매일같이 되살아오는 닭 모습의 불사조. 돈밖에 모르는 이사장. 참치로 아이들을 죽도록 때리는 수학 선생님.

등장인물을 과장되게 그렸지만 정말로 있을 법하다는 게 더 아이러니한 이 만화는 중 고등학생들한테 엄청난

공감과 웃음을 선사했다.

 

이때부터였을까? 나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또래가 적지 않다는 것에 위안을 받았다. 똑같은 웹툰을 보고

남기는 댓글에선 내가 웃은 포인트에 그들도 웃었다. 각자의 선생님 중 누가 더 그 캐릭터와 싱크로율이 높은지

따져보기도 했다. 누구보다도 특별해지고 싶었지만, 누구와도 달라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과 공통점을

발견할 때마다 왠지 모를 안도감에 기분이 나아지곤 했다.

 

그때부터 나는 마음이 저절로 응원하는 주인공과 웹툰을 찾게 되었다. 시청률에 따라 드라마를 선택하고, 박스오피스

순위를 보고 영화를 고르던 나였는데, 난생처음 스스로 보고 싶은 웹툰을 선택하며, 내게 필요한 스토리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어쿠스틱 라이프>와 같은 일상 이야기, 강풀의 <그대를 사랑합니다>와 같은 드라마,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일상 속의 이야기에 집중한 작품들을 보면서, 평소 드라마에서 보이는 자극적이고 매번 똑같은

패턴의 스토리 전개보다, 마음을 움직이는 건 이런 거라고 느낀 적이 많았다. 오락 거리의 한 종류로 생각했던

웹툰에 대한 편견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때가 스토리의 영향력을 인지하게 된 시점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도 중요했지만, 같은 또래한테 인기 있던 웹툰도 놓치지 않았다. <패션왕>, <연애혁명>

같은 중고등학교 배경의 웹툰이 역시 인기였다. 솔직히 우리 세대만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걸 성인 작가가

정확히 캐치하는 게 놀라웠다. 색깔 별로 입고 다니는 노스페이스 패딩, 또래만 감지하던 묘한 신경전. 정말

학교 다니는 10대가 아니면 알 수 없을 것들이 만화로 가감 없이 그려져 나오니 우리는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TV, 영화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그저 오감으로만 알 수 있던 그 학교의 분위기가 그대로 살아있었다.

그 어떤 스토리에서도 만날 수 없던 우리만의 이야기가 처음 누군가로 인해 끌려 나온 걸 본 경험이었다.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된 후에는 <치즈 인 더 트랩>, <유미의 세포들> 그리고 <대학일기>와 같은 20대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웹툰을 자연스럽게 보게 되었다. 특히 <대학일기> 같은 경우, 한 편마다 다큐멘터리처럼 고스란히 녹아있는

내 모습들에 기가 차면서도, 사람 사는 게 다 똑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역시나 댓글들을 보면 하나같이 ㅠㅠ

같은 공감 어린 눈물들의 향연. 웹툰 장르 중 특히 일상 웹툰은 이런 자신만의 장점을 계속 유지해갔다.

 

우리는 원하지 않았다. 어려운 문장을 굳이 쓰는 소설 같은 이야기, 백마 탄 왕자님이 나타나는 이야기, 시어머니와

갈등하는 막장 드라마 같은 이야기 말이다. 독자들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너무나도 평범하기 그지없는 생활

이야기가 매주 업데이트되길 기다렸다. 그런 작품들의 가장 큰 힘은 바로 공감이었다. 독자들은 그들에게

필요한 공감을 매주 기다렸다.

 

하루 평균 1, 2개의 연재 작품을 찾아본다는 20대들. 언제 어디서는 볼 수 있는 이런 웹툰은 이제는 웹툰

플랫폼에서만이 아니라 드라마, 영화로 재탄생되며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이제 웹툰은 더는 인터넷상의 단순한

만화 콘텐츠가 아니다.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시리즈 두 편이 다 천만이 넘는 흥행을 달성한

영화 <신과 함께>를 보자. 죽음 이후의 저승세계를 그린 이 이야기는 웹툰 연재 시절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영화 역시 7개의 저승을 건너는 이야기가 흥미롭게 진행되는데,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결정적인 포인트는

따로 있었다. 웹툰 원작은 주인공 김자홍의 인생과 함께 저승을 넘지 못하는 각자의 이유를 재미있게 보여줬다.

특히 상상 속 지옥을 참신하게 구성했다. 무엇보다 누구나 공감할만한 이야기를 끌어냈는데, 이 점이 영화의

각색 포인트가 되어서 역대급 흥행 결과를 만들었다.

 

웹툰을 보았던 20, 30대들은 그들만의 기대감으로 영화관을 찾았는데, 40, 50대 가족과도 함께 했다. 홀로

컴퓨터 앞에 앉아 보았던 웹툰이 거대한 스케일의 영화로 만들어진 것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연재 1회부터

매주 기다리며 보다가 연재 끝까지 함께 달렸던 작품이 영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 내가 공감을 했던 장면에서

다시 한번 관객으로 함께 공감한다는 것. 그런 경험은 특별했다.

 

독자들은 영상화되는 웹툰이 최적의 상태로 만들어지길 원한다. 그래서 영상화가 확정되는 순간, 주인공 캐스팅에

대한 이야기가 인터넷에 올라오기 시작한다. 배우들을 비교해가며 웹툰이 멋진 영화로 재탄생하기를 원하는

독자들. 그렇게 자신이 사랑하는 작품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소중하게 여긴다.

 

웹툰 한 편을 다 보는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2, 3분 남짓이다. 물론 손가락으로 휙휙 넘겨보는 작품이 있지만,

기억에 오래 남는 작품도 많다. 아침에 힘겹게 눈을 뜨고 멍 때리는 그 시간, 출근 버스나 지하철 안 사람들 틈에 낀

그 시간, 홀로 점심을 먹는 그 시간, 웹툰은 그 잠깐의 시간 동안 함께 하기에 너무나 적절한 파트너이다.

 

이미 우리 삶에 너무나도 익숙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웹툰. 과제로 취업으로 바쁜 20대한테 웹툰은 어떤

콘텐츠보다 가깝고 친숙하다. 일주일에 한 번 혹은 두번씩 올라오는 웹툰을 챙겨보며 독자들은 댓글로 공감을

나누기도 하고, 작가에게 말을 전달하기도 한다. “분량이 왜 이렇게 적어요?” 같은 불만부터 작가의 건강 걱정까지.

휴재 공지라도 올라오면 그동안 달리느라 고생했다고 다독여주기까지 한다. 그들에게 웹툰 작가는 단순한

콘텐츠 공급자가 아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료이자, 함께 공감하는 친구이자, 교훈을 주는 선생님이다.

 

그 누구보다 단단한 어른이 될 줄 알았던 나는, 10대 때 느꼈던 나보다 지금이 더 작고 여리다. 생활의 모든

것이었던 고등학교에서의 시간도 가물가물해지고, 죽고 못 살았던 친구들과의 사이도 서먹해졌다. 그들의 이름마저

제대로 떠오르지 않는 지금, 나는 웹툰 속 주인공들과 댓글에 달린 또 다른 들과 함께 공감을 나눈다. 그들의

재치어린 말에 웃음이 나고,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이가 여기에 또 있다는 생각에 짠해지기도 한다.

 

무심코 본 웹툰에 누군가는 인생 이야기를 댓글로 터놓기도 한다. 댓글을 보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래서 몇 번씩

그 웹툰을 다시 읽고 내려오기도 한다. ‘온 마음을 터놓고 말할 친구가 한 명 이상 있으면 성공한 인생이다라는

각박한 현실에서 웹툰은 20대에게 가장 편하고 가깝게 다독임 받을 수 있는 공간이다. 어느 때나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아갈 수 있다는 것. 언제든지 자신과 함께 공감해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 10년 이상 웹툰과 함께해 온

20대가 앞으로도 웹툰과 함께할 가장 큰 이유다.

 

여름 | 추계예술대학교 영상시나리오학과 4학년. 웹툰과 함께 10대를 보낸 20.



*<지금, 만화> 제1호~제5호는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PDF파일을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