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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루랄라 만화 편력기 혹은 유랑기


처음 생각은 만화 좋아하는 사람들이

마음 편히 들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 작가도 독자도 비평가도 편집자도 만화를 좋아하는 어떤 이라도 들르곤 하는,

만화인들의 성지 한양문고 가까이에 장소를 구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한양문고가 사라졌다(한양 Toonk로 이름이 바뀐 지 오래되었지만 오랜 단골들은 옛 이름인 한양문고를 계속 써왔다).

10년이 넘도록 하루가 멀다고 들러 신간을 확인하고, 한두 권쯤 만화책을 사 오던 일상이 어그러져 버렸다.

한양문고가 휴업한 지 세 달. 인터넷 서점이라도 이용할 법하지만, 나는 아직 한 권의 만화책도 구입하지 못 했다.

 

한잔의 룰루랄라가 지금 위치에 자리 잡은 것은 한양문고가 가까이 있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처음 생각은 만화

좋아하는 사람들이 마음 편히 들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 작가도 독자도 비평가도

편집자도 만화를 좋아하는 어떤 이라도 들르곤 하는, 만화인들의 성지 한양문고 가까이에 장소를 구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SNS가 없었던 시절이라 한양문고에 전단을 놓아두는 것 말고는 별다른 홍보 수단이 없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그 전단 한 장으로 한잔의 룰루랄라라는 공간이 생겼다는 걸 만화인들한테 넉넉히 알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왜 만화 좋아하는 사람들이 마음 편히 들를 수 있는 공간을 꿈꿨을까? 내게 만화방 소파에 앉아 만화를 읽는 일은

방바닥에서 뒹굴며 혹은 도서관 의자에 앉아 만화를 읽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경험이었다. 목적지에 가기 위해 운전석에

앉는 것과 승객석에 앉는 것만큼의 차이랄까?

 

내 몸에 꼭 맞게 낡고 오래된 소파에 앉았을 때에야 비로소 나는 작가가 창조해놓은 세계에 오롯이 들어가 주인공들과

함께 땀 흘리며 싸우거나 웃고 절망하고 애틋하게 바라보고 저 은하계 너머 안드로메다까지도 갔다 올 수 있게 되곤 했다.

관찰자가 아닌 경험자로서. 그것은 오랜 습관인 탓일까? 아니면 공간과 분위기가 주는 힘이었을까?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인

좁은 공간에 앉아 그중 한 권을 뽑아서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여는 일. 나의 만화 편력기는 그러한 공간에 대한 유랑기이기도 하다.

코흘리개 시절 처음 갔었던 대본소의 풍경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나무판자로 짜인 책장에 얇은 대본소용 만화책이 표지가

보이도록 세워져 있었다. 책이 쓰러지지 않도록 책장 양 끝으로 검은 고무줄이 이어져 있어서 꼬맹이였던 나는 그 고무줄 밑으로

책을 끄집어내야 했다. 아직 만화책보다는 한자 제목을 책등에 새긴 무협지가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대본소.

1987년 여름 무렵엔 동네 만홧가게의 선풍기 바람이 닿지 않는 구석 자리에 자주 앉아 있었다. 간혹 옅은 최루탄 냄새가

만홧가게 안까지 스며들어 오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은 문이며 창문을 꼭꼭 닫아두기 마련이어서 선풍기 바람이 닿는 곳으로

슬며시 자리를 옮겨 앉기도 했다. 어떤 날은 멀리서 희미한 함성이 들려오기도 했지만, 만화에 빠져 있던 내 귀엔 손글씨로

그려진 만화 속 효과음이 워낙 크게 들려서 현실의 함성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내가 앉았던 테이블 위에는 <만화광장>, <주간만화> 같은 성인 만화잡지가 쌓여 있곤 했다. 당시엔 아직 중학생이었지만,

만홧가게 아저씨는 앳돼 보이는 중학생 꼬마가 성인용 잡지를 가져다 보는 걸 제지하지 않았다. 하긴 빨간색 ‘19표시가

책 표지에 인쇄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대신 인쇄된 건 심의 필표시였던가. 또래 친구들이 <건강다이제스트>의 수영복

화보를 흘끔거리는 사이에 나는 한발 앞서 어른들의 세계를 엿보았던 셈이다.

 

그리고 그 시기에 인생의 만화를 만났다. <만화광장>에 연재되었던 허영만, 김세영 작가의 <! 한강>. 주인공 이강토의

인생 편력과 예술관, 역사 인식에 매료되어 몇 번이고 되풀이해 보았다. 시간이 지나서 마침내 단행본이 나왔을 때는

어떻게든 이 책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대본소용 만화책을 판매하는 서점은 찾을 수 없었다. 수소문 끝에 동대문의

만화 도매상에 가면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네이버 지식인도, 구글 맵도 없던 시절. 어떻게 그 복잡한

동대문에서 만화도매상을 찾아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마침내 10권짜리 <! 한강>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렇게

구입한 단행본에선 같은 그림이 클로즈업되면서 몇 번씩 반복되는 기괴한 연출이 간혹 눈에 띄었는데, 당시에는 마감 시간이

촉박해 그림 그릴 시간이 부족했던 걸까?’ 하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훗날 들어보니 당시 많은 만화들이 컷 재활용을 많이 했다고 한다.

 

1980년대 후반, <아이큐 점프>가 창간되면서 <드래곤볼> 열풍이 불었다. 다음 편을 빨리 보고 싶어 하는 독자들이 워낙

많았다. 아직 저작권 개념이 일반화되지 않았던 탓에 국내에 정식 발행되지 않은 일본 연재분이 싼값의 해적판으로

시중에 마구 뿌려지기도 했다. <드래곤볼><슬램덩크>의 인기를 등에 업고 일본 출판만화가 만홧가게에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이때쯤부터였나? 만홧가게라는 말은 점차 줄어들고 함께 쓰이던 만화방 이란 표현으로 통일되기 시작했다.

사실 만홧가게는 만화를 판매하는 곳이 아니고, 보여주거나 빌려주는(대본) 곳이었으니 가게라는 이름이 맞는

이름은 아니었던 셈이다. 아직 만화책을 사서본다는 개념이 익숙하지 않았던 때였다. <먼 나라 이웃 나라> 외의 만화책이

서가에 꽂혀있는 집은 아마 많지 않았을 것이다.

 

1990년대 말, 국가 부도 사태가 터지면서 평생직장이란 개념이 박살 나고 실직자가 된 많은 사람들이 비정규직이나

자영업의 길로 내몰리게 되었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것이 도서(실질적으로 만화)대여점. 동네마다 몇 개씩

도서대여점이 새로 생겨났다. 많았을 때는 전국의 대여점 수가 2만 곳을 넘었었다고 하니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인터넷 개념이 아직 일반화되지 않았던 시절, 일을 잃거나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싼값으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만화책을

빌려다 봤을 터. 그만큼 수요가 있었던 셈이었을까? 작가들에게 가야할 수익을 대여점이 가로챈다는 논란도 있었는데,

다른 의미로 비약하자면 출판사와 유통사, 대여점에 이르기까지 그 수많은 종사자와 가족들을 만화가들이 먹여 살렸던 셈이다.

 

한양문고가 문을 연 것이 아마 이 무렵. 하지만 아직 한양문고의 존재를 몰랐던 나는 여전히 만화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직장 생활을 할 때는 퇴근 후에, 직장을 다니지 않던 때에는 거의 온종일.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한양문고를

알게 된 건 출판만화가 쇠퇴하고 웹툰이 태동하던 무렵이었다. 동대문 골목을 헤매지 않고도 여느 서점에서 살 수

없는 만화책들을 둘러보고 살 수 있었다는 사실에 고무되어 금세 단골이 되었다.

 

마침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만화 편집 일을 하게 되었는데 업무 때문에라도 자주 들러야 했다. 또 마침 홍대 쪽으로

이사를 하게 되기도 해서 거의 매일 들려서 신간을 확인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급기야는 한양문고 옆에 카페를

차리게 되었으니 짧고도 굵은 인연이었다고나 할까?

 

아니, ‘한잔의 룰루랄라카페를 차린 지도 10년이 훌쩍 넘었으니 더는 짧은인연이라 할 수도 없게 되었다.

그리고 10년이 넘도록 하루가 멀다고 들러 한두 권쯤 만화책을 사 오던 일상이 어그러져 버렸다. 마지막으로 들렀을 때

한동안 안 보이시던 사모님이 나와 계셔서 반가운 마음으로 인사를 드렸는데, 너무 살이 빠지고 마르셔서 깜짝 놀랐었다.

그 사이에 위암 수술을 받으셨다고 했다. 다행히 수술을 잘 마치셨다며 웃으셨다. 며칠 뒤 들렀을 때, 잠긴 한양문고 문 앞에

휴업공고가 붙어있었다.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문이 영원히 닫혀버린 기분이었다. 더는 네버랜드로 갈 수 없게 된 웬디의 심정이 이랬을까.

 

공교롭기도 하지. 한양문고가 문을 닫은 며칠 후에 카페 한잔의 룰루랄라가 세 들어 있는 건물의 리모델링 통보를

받게 되었다. 10년 동안 나의 일터이자 만화방이었고, 지옥이자 낙원이었던 이곳.

 

이 공간이 사라지면 무얼 하며 살아야 하나?’ 하는 계획을 세우는 일은 일단 미뤄두고, 지금은 어떻게

멋진 마무리를 할 수 있을까 궁리 중이다. 만화적 상상력이여, 나를 도우소서.

 

이성민 | 늘 재미있는 일을 찾아왔고 지금도 (애타게) 찾는 중.

카피라이터, 잡지 편집, 만화 기획 같은 일을 해왔고, 홍대에서 카페

한잔의 룰루랄라를 운영하며 간혹 인디음악가들의 공연을 기획했다.



*<지금, 만화> 제1호~제5호는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PDF파일을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