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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비불패>, 유머의 한 수를 더해 절대 고수에 오른 무협 만화

동양의 톨킨이라 칭송받던 김용 선생께서 돌아가셨다. 정말이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밤을 새우면서 <영웅문>

읽었던 학창 시절의 날들이. <영웅문> 이후 김용 선생이 창조한 세계에 흠뻑 빠진 나는 그의 다른 작품들을

다 구해서 읽고, 또 읽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탓에 내용 대부분을 잊은 게 사실이다. 어쩌면 내 모자란 기억력의

탓일 수도 있을 터다. 하지만 나는 마땅히 그에게 감사 인사를 전해야 한다. 내게 독서의 즐거움을 알려준 작가 중 한 명인 까닭이다.

 

김용 선생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무술 혹은 무협이라는 단어를 떠올려본다. 나 역시 무술 영웅들을 동경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영웅문> 부류의 무협지를 포함해 팔극권을 다룬 만화 <권법 소년>, 천제황의 만화들,

그리고 무엇보다 성룡과 <황비홍>의 이연걸 등등. 그래서였을까? 고등학교에서는 중국어를 전공했고, 지금도 열심히 중국어를

공부하며 언젠가 있을지 모를 대륙 진출(?)을 꿈꾸고 있다. 그런데 대체 무슨 명목으로 진출을 하지?

 

내 인생의 만화에 반드시 언급해야 할 작품이 있다. 만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모를 수가 없는 걸작, <용비불패>.

내가 <용비불패>를 처음 접했던 건 대학 시절 만화방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였다. ‘, 용비불패라. 어디, 진짜로 불패하는지

한번 볼까?’하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던 게 기억난다. 처음에는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후의 전개는 여러분의 예상 그대로다. 나는 이 만화를 아르바이트가 끝난 뒤에도 사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다 읽어버렸다.

이유는 단순하고 명확하다. 끝내주게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좋은 만화란 결국 입체적인 캐릭터 창조에서 승부가

갈린다고 여기는 쪽이다. <용비불패>를 보라. 대체 선인지 악인지, 그도 아니면 그냥 돈에 환장한 놈인지 모를 주인공 용비부터

일단 매력적이지 않은가? 심지어 이 작품은 용비의 말인 비룡에게도 캐릭터를 부여했는데, ‘<용비불패>에서 가장 애정하는

캐릭터는?’이라는 질문에 비룡이라고 답할 사람, 꽤 많을 거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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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피불패>

(글 류기운, 그림 문정후 / 찬스, 부킹 연재)


 

나의 경우에는 글쎄, 천잔왕 구휘를 고르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그와 용비, 비룡이 삼위일체를 이루며 선사하는 웃음

폭탄의 강도는, 가히 <영웅문> 속 구양신공의 그것에 비견될 만하다고 믿는다. 확언할 순 없지만 때로는 화장실 수준까지

서슴없이 넘나드는 코미디가 없었다면 <용비불패>는 지금과 같은 명성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기실 용비는 비극적인

배경을 지닌 주인공이다. 그가 돈에 미친 이유 역시 이와 무관치 않다. 그러니까, 작가가 진지하게 가려고 마음먹었으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을 게다. 과거의 무협 만화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과연 그렇다. 내가 <용비불패>를 사랑한 가장 큰 이유, 그건 바로 무거움과 가벼움의 절묘한 공존이었다. 문정후 작가의 작화

실력이야 강조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핵심은, 거대한 스케일의 연출로 밀어붙이는 와중에도 소소한 재미를 놓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용비불패>는 똥 묻은 금화경을 개처럼 혀로 핥는 용비와 다음처럼 엄숙한 대사를 읊는 용비를 하나의 캐릭터

안에 탁월하게 녹여낸다. “스승이란 존재를 겪어보진 못했지만 그 호칭은 단순히 무공을 가르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들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나는 유머 감각이 철저하게 결여된 사람(속된 말로 진지충’)을 대체로 신뢰하지 않는다.

이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적절한 유머 감각이 부재한 어른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문정후 작가와

류기운 작가를 직접 만나본 적은 물론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왠지 좋은 어른일 것 같다. 나의 경우, 좋은 어른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적어도 나쁘지는 않은 어른이 되기 위해 오늘도 나는 무림비급을 연마하듯 내 유머력을 갈고 닦는다.

용비처럼 똥 묻은 금화경을 혀로 핥을 자신은 없지만.

 

배순탁 |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지금, 만화> 제1호~제5호는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PDF파일을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