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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곳에 만화 평론이 필요한 이유를 묻다

지금, 이곳에 만화 평론이 필요한 이유를 묻다

만화 웹툰 정보지 발간 및 평론과 큐레이션을 위한 대토론회개최

  

 

질문은, ‘만화 평론은 왜 필요한가?’에서

지금 만화 평론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과연 한국 만화 웹툰 시장을 둘러싼 건강한 논의의 장은 만들어질 수 있을까? 지난 112일 서울시 홍릉

KOCCA 콘텐츠 인재 캠퍼스 3층 대강의장에서는 ()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와 ()한국애니메이션학회가 공동

주최한 만화·웹툰 정보지 발간 및 평론과 큐레이션을 위한 대토론회’(사회: 한창완 세종대학교 교수)가 열렸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하는 만화 웹툰 정보지 계간 <지금, 만화> 창간호 발간과 함께 만화 평론의 현재

위치와 전망을 나누기 위해 마련한 것. 이 토론회는 만화 평론의 필요성, 한국 만화 평론의 역사, 웹툰 큐레이션의

필요성, 정보지 1호 발간 의의 및 편집 방향성까지 총 4개 세션으로 진행되었다.

 

세션1 만화 평론의 필요성 -만화 평론의 당위는 어디에 있는가?

발제 | 한상정 인천대학교 교수, 토론: 김병수 목원대학교 교수, 이화자 공주대학교 교수

첫 번째 세션의 발제자인 인천대학교 한상정 교수는 우선 현재 만화 평론이 필요한 당위에 대해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만화 평론은 창작물의 다층적 의미를 독자들과 이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시장에서

소외되거나 미처 독자들의 관심을 받지 못한 작품들의 가치를 알아보게 하고, 콘텐츠 다양성 확보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어느 때보다 커진 만화 시장에서 만화 평론은 만화에 대한 논의를 활성화해

시장에 유의미한 피드백을 해줄 수 있거나 혹은 해줘야 한다는 것.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한상정 교수는 현재 만화 평론이 부재한 이유에 대해 90년대 이후 사라져버린 등단 제도의 미약과 설령 등단한다

해도 글을 게재할 지면의 부재, 그리고 평론을 활성화할 수상 제도의 부족함을 지적했다. 2015<크릭틱 M>

사례처럼, 국가 지원 사업의 경우 계약 기간이 1년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매체 편집의 자율성도

완벽히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 매체의 정체성과 브랜드를 확립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편집 방향의 일관성과 일정

기간 이상의 지속성이라고 할 때, 현재의 지원 제도는 명백한 한계를 드러낸다. 즉 현재까지와 같은 단기 지원

사업 방식으로는 만화 평론의 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한상정 교수는 문제 해결을 등단과 수상(보상), 지면 확보 세 가지 영역에서 진행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등단과

수상의 미약함은 공적 기관을 통해 공모전과 시상이 1년에 한 번이라도 꾸준히 진행된다면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다고. 가장 어렵고 중요한 건 결국 지면의 확보다. 한상정 교수는 현재 웹툰을 연재하는 플랫폼에서 평론을

위한 지면을 확보해주는 평론 쿼터제를 제안했다.

웹툰이 미치는 사회적 교육적 영향력을 고려했을 때, 그에 대한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한 책임 역시 플랫폼이 어느

정도 져야 한다는 논리다. 물론 수익을 내는 것이 목적인 회사에 이러한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기 위해선 더 많은

논거, 특히 시장적인 관점에서의 논거가 필요하다. 한상정 교수는 만화 평론 역시 웹툰처럼 독자를 모아 자체

조회 수를 높일 수 있으며, 큐레이션을 통해 각 웹툰의 조회 수를 높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논거로 제시했다. 만화 평론의 존재 가치를 단순히 당위의 차원에서만 다루는 것을 넘어 시장 논리 안에서도 다루려

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제안이라 할 수 있지만, 여기엔 여전히 여러 의문이 따른다. 정말로 만화 평론으로부터

그러한 수익성이 기대된다면 왜 플랫폼들은 관심을 가지지 않는가? 한국 만화 평론계는 동시대의 젊은 웹툰

독자들이 재밌게 읽을 만한 평론을 제공할 역량을 가지고 있는가? 혹 만화 평론이 독자와 시장으로부터 외면받은

이유에 대해서는 눈 감고 책임을 플랫폼과 공적 기관에 전가하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질문은, ‘만화 평론은 왜

필요한가?’에서 지금 만화 평론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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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션2 한국 만화 평론의 역사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발제 | 박인하 청강대학교 교수, 토론: 권경민 남서울대학교 교수, 박석환 한국영상대학교 교수

두 번째 세션에서 청강대학교 박인하 교수의 발제는 단순히 만화 평론의 역사를 기계적으로 소개하기보다는

각 시기의 만화 평론이 당대에 어떤 실천적 역할을 했는지 짚어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에 따르면 한국 만화 평론의 계보의 출발점은 1970년대의 대표적인 문화 잡지 <뿌리 깊은 나무>만화는

문학이다라는 글을 쓴 문학 평론가 김현이다. 당대 문학 평론의 거두였던 그는 만화를 즐기면서도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문화적이지 못한 것으로 치부하려는 생각은 건강한 생각이 못 된다. (중략) 만화도 역시 중요한

문화적인 장르이며, 그것은 그것대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했다고. 당시로써는 상당히 혁신적인 관점으로 만화에

대한 당대의 선입관에 도전한 것. 또한 비슷한 시기에 시인 오규원은 고바우 영감과 요즘 월급쟁이 -김성환의

<고바우 영감>’, ‘고우영이 썩 괜찮은 경우 -만화 <삼국지>에 나타난 솜씨등의 글을 통해 개별 작품들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보여주었다고 설명했다. 그들이 남긴 글이 한국 만화 평론의 출발점이기도 하지만, 이미 당대를

대표하던 두 지식인이 만화를 진지하게 해석 및 평가해야 할 문화적 텍스트로 규정한 것은 일종의 패러다임

전환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만화와 만화 평론의 패러다임 전환은 1980년대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의 등장과 함께 한 번 더 벌어진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랑을 받는 마스터피스가 등장하자 만화에 대한 논의 역시 더욱 확장된다. 박인하 교수의

말을 빌리면, 만화 독자층이 특정 세대를 중심으로 횡적으로 팽창하기보단 다양한 세대로 종적으로 팽창할 때

만화 담론은 활성화된다. 덕분에 미술운동과 사회학, 신문방송학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만화 평론가들이

등장하며 이것은 박인하 교수 본인을 비롯해 현재 학계와 평론계를 구성하는 1990년대 평론가의 등장으로 이어진다.

박인하 교수는 등단 제도가 존재하고, 그렇게 등장한 평론가들이 만화평론가협회를 만들면서 한국 만화에 대한 담론은 그 어느 때보다 활성화되었다고 한다.

<우리 만화 가까이 보기>, <한국 만화의 모험가들> 등 만화평론가협회가 발간한 작업물은 독자적 문화로서의

한국 만화에 대한 기록인 동시에 이론 체계의 구성이기도 했다.

 

하지만 1세션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문제는 그렇게 활발했던 만화 평론 활동이 그 맥이 끊기거나

지지부진하다는 것이다. 박인하 교수는 이 지점에서 자기 세대 평론가 및 학자들의 책임을 이야기했다. 그래도 운이

좋아 등단도 하고 활동도 해서 어느 정도 학계 기반을 마련한 자신들과 달리 척박한 환경에 있는 신진 평론가 및

연구자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그것은 후속 학술 세대를 위한 자료 아카이빙의 역할일

수도 있으며, 지면 및 활동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일 수도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문제의식이 만화계 바깥의

공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

 

세션3 웹툰 큐레이션의 필요성 -만화 평론은 동시대 독자를 위한 큐레이션이 될 수 있을까?

발제 | 박세현 ()팬텀콘텐츠팩토리 대표, 토론: 강태진 ()웹툰가이드 대표, 이승진 경기대학교 교수

첫 번째 두 번째 세션이 만화계 혹은 만화 학계의 입장에서 만화 평론 활성화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면,

()팬덤콘텐츠팩토리 박세현 대표가 발제를 맡은 세 번째 세션은 현재 웹툰 시장에서 큐레이션이 어떤 역할을 해줄

수 있는지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웹툰 큐레이션과 만화 평론을 동일한 범주에 놓을 수는 없지만 현재 시장에서 만화 평론이 만화 소비자들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중요 요소가 큐레이션이라는 점에서 앞의 세션들과 문제의식을 공유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박세현 대표는 넷플릭스 등의 모범 사례를 예시로 들며 콘텐츠 서비스 플랫폼에서의 큐레이션이란

대량의 미디어 정보를 취합하고 소화할 수 없는 미디어 소비자들이 손쉽게 선택하고 독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 규정했다. 박세현 대표는 이러한 관점에서 에디큐레이션(edi-curation: editing+curation)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제시했다. 즉 큐레이션이 단순히 이미 존재하는 콘텐츠를 선별 및 소개하는 것을 넘어 해당

콘텐츠를 편집하는 과정을 통해 그 자체 또 다른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웹툰의 경우 소비 방식이

다양하기 때문에 이러한 에디큐레이션이 트랜스미디어 시대 웹툰 콘텐츠 유통과 소비의 중요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박세현 대표가 예로 든 SNS 웹툰을 출판으로 재편집해 내는 과정도 일종의 에디큐레이션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예시에도 불구하고 에디큐레이션이란 개념의 실용적 가치에 대해서는 여러 의문이 따른다. 이미

타 미디어를 통해 인기가 증명된 작품을 단지 출판물로 변환하는 작업을, 웹툰을 출판물로 만들어온 지난 십수 년의

출판 작업과 확실히 구별할 수 있을까? 정말로 에디큐레이션을 통해 텍스트의 새로운 이종교배가 만들어졌는가?

웹툰 소비자들의 선택에 실제로 도움을 주고 만족감을 주는 사례가 있는가? 이것은 결국 만화 평론이

큐레이션이라는 방법론을 통해 현재적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기도 하다.

 

세션4 만화 웹툰 정보지 1호 발간의 의의와 편집 방향성 -비평지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발제 | 위근우 <지금, 만화> 편집장, 토론: 박기수 한양대학교 교수, 이해광 상명대학교 교수

네 번째 세션은 만화 웹툰 정보지 <지금, 만화>의 기획과 편집을 담당하는 위근우 편집장이 발제자로서 앞의

세션에서 제기된 문제들과 만화 평론의 현재적 가치를 어떻게 잡지 안에서 담아내려 했는지 설명하는 시간이었다.

그는 한상정 교수가 제기한 만화 평론의 부재에 동의하면서도 이것이 단순히 만화 담론의 공백이 아닌,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무책임한 말의 범람 안에서의 문제라는 것을 지적했다. 즉 수준 미달의 유사 공론장이

만화 담론의 중추 역할을 하고 담론이 교란되는 상황에서 만화 평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위해

국가 용역 사업으로서의 만화 웹툰 정보지가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하는지를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출판사 민음사가 만든 격월간 문학비평지 <릿터>가 동시대적 문화 이슈를 적극적으로 끌어안으며, 문학 평론에

더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동시대의 문화 소비자들을 독자로 끌어들인 사례를 들며, <지금, 만화> 역시 만화에

대한 장르적 접근을 넘어 동시대적 이슈와 함께 이야기하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테면,

만화 <복학왕>이 그려내는 지방대 학생들의 무기력함에 주목한 문화사회학 연구서인 <복학왕의 사회학> 같은 사례가

<지금, 만화> 안에서도 나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개별 작품에 대한 비평뿐 아니라 만화를 주제로

한 에세이 코너를 만들고, 다양한 영역의 필자를 섭외해 현재 만화 웹툰의 동시대적 의의들을 다양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위근우 편집장의 전략이자 편집 방향성이다.

 

물론 해당 세션의 토론자로 나온 한양대학교 박기수 교수의 지적대로 <지금, 만화>의 방향성이 현재 만화

평론이 겪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을 가질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아니 실질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위근우 편집장의 말대로 중요한 건 <지금, 만화>의 발간이 만화에 대한 책임감 있는 공론장을 활성화할 한 계기가

되고, 그 파장 안에서 학계와 평론가들이 만화 소비자들과 소통할 접점을 늘려나가며 만화 평론의 의의를 실증하는

것이다. 모든 진지한 내부 성찰이 그러하듯, 이번 만화·웹툰 정보지 발간 및 평론과 큐레이션을 위한 대토론회

가치는 결국 토론이 끝난 뒤 토론회장 바깥에서 증명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 만화> 제1호~제5호는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PDF파일을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