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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김성근 시대의 웹툰

기고

포스트 김성근 시대의 웹툰


 


글 DCDC

이런 시절도 있었다

 

1.
2017년, 결국 김성근이 감독 자리에서 물러났다. 언제나 논란이 많은 인물이었지만 한화 감독으로 재임하는 동안 그를 향한 구설수는 특히 더 멈추지 않았다. 그가 사령탑에 있는 동안 한화의 투수들은 혹사와 그로 인한 부상 그리고 수술로 본래의 기량을 잃거나 마운드를 떠나야만 했다.
이렇게 투수진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김성근은 공을 던지면 던질수록 쓸데없는 힘이 빠지고 자연스러운 폼이 나와 좋은 공을 던질 수 있다는, 흡사 80년대 연재된 일본의 열혈 청춘 스포츠 야구만화와 같은 철학을 관철했으나 현실은 그와 같지 않았다.
 
문제는 혹사만이 아니었다. 한화 투수진의 기량저하에는 김성근이 자행한 퀵훅과 보직붕괴 등의 원칙 없는 운영 역시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흔히 말하는 대로 투수의 팔은 소모품이다. 투수에게 가능한 투구 수는 정해져 있고 그 숫자를 넘겨 쥐어짤수록 투수의 기량과 선수 생명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여기에 선발은 믿지 못하고 중간계투는 선발처럼 부려 어울리지 않는 보직을 강제하기까지 했으니 투수들이 소모되는 속도에 박차가 가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김성근의 조바심은 투수들의 혹사로, 부상으로, 팀의 부진으로 연결되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재능 있는 이들의 혹사와 그로 인한 생태계의 붕괴는 프로야구만의 일이 아니다. 관례라고 할 문화가 아직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웹툰 업계는 더더욱 그렇다. 작가에 대한 혹사는 단기적으로는 작품의 질적 하락을, 장기적으로는 작가 생명의 단축을, 보다 더 장기적으로는 웹툰 업계 자체의 붕괴로 이어질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 주제는 새삼스러워서 굳이 다루기도 민망하긴 하지만, 다음 문단부터는 조금 더 디테일하게 들어가 작가들의 보직문제에 대해 고민해보도록 하자.



 


‘혁아 넌 특타하고 가야지’ 

 

2.
흔히들 야구는 투수놀음이라고들 한다. 승패에는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지만 무엇보다도 팀이 보유한 투수들의 수준이 그 변수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투수는 어떤 투수인가? 또 좋은 투수를 많이 보유한 팀은 어떤 팀인가?
물론 누구도 부정 못 할 놀라운 수준의 기량을 가진 선수가 있다면 좋을 것이다. 화·수·목·금·토·일 등판이 가능하며 하루에 200구를 소화하고 구속이 170km를 넘는 제구력이 완벽한 투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선수는 존재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그러니 그런 꿈같은 선수를 찾아 헤매기 전에, 일단 일정한 수준 이상의-다양한 종류의 투수를 확보한 팀이 강팀인 것은 분명하다.
투구 폼, 구속, 제구력 등 투수의 개성이 되는 요소에는 여러 가지가 있고 어떤 요소가 어느 만큼의 가치를 갖느냐는 절대적인 기준보다는 상대적인, 상황과 상성에 더 좌우되기 때문이다.
 
또 한 번 당연한 이야기를 하자면 다양성을 확보하는 일은 웹툰 업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몇 년 분량의 장편이든 몇 개월 분량의 중편이든 단 하루의 단편이든 시장과 생태계에서 나름의 위치와 의미가 있다.
TV 드라마로 만들기 적합한 로맨스나 전철에서 잠깐 보기에 어울리는 4컷 개그만화나 각자의 보직을 담당한다. 좋은 투수에 대해 고민할 때 투구 수만을 기준으로 할 수 없는 것처럼 연재의 양이나 수익 같은 수치들은 작품의 가치와 정비례하지 않는 문제이며, 오히려 각자가 자신의 역할을 다할 때 서로에게 더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런 관계성을 갖는다. 필요에 따라 다양한 작전을 위해 기용의 가능성이 넓어야 하는 것은 프로야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고 웹툰 업계에 대한 의문 역시 마찬가지다. 과연 지금의 플랫폼들은 다양한 성향의 작가들을 그들에게 가장 적합한 보직에 배치하고 있는가? 웹툰 업계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장편 개그도 필요하고 중편 서스펜스도 필요하고 단편 액션도 필요하다. 작품과 작가에게 맞는 분량과 호흡은 그 숫자만큼 존재한다.
하지만 현재 웹툰 플랫폼의 대다수는 주간 연재라는 큰 형식을 갖고 있으며 몇 년 단위의 장편 연재가 아니고서는 고정적인 자리 잡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이미 웹툰 작가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분량의 원고 컷 수를 소화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렇게 주간연재와 그 분량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때마다 흔히 반론으로 제시되는 인물이 바로 조석 작가다. 물론 조석 작가는 네이버 웹툰의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놀라울 정도의 분량과 퀄리티를 유지하는 대작가이지만, 달리 말해 웹툰의 역사에서 조석 작가와 같은 작가는 조석 작가가 유일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모두가 조석 작가 같지도 않고, 같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유희관처럼 느린 구속을 활용해 선발로서 긴 이닝을 소화하는 투수가 있지만 15년도의 권혁처럼 빠른 구속에 중간 계투로서 필승 조의 역할을 담당하는 투수도 있는 법인데, 웹툰 플랫폼 역시 강속구에 완봉이 가능한 투수만을 바라서는 안 될 것이다.
 
사실 주간연재의 당위는 딱히 없다. 처음에 그렇게 시작했고, 그렇게 시작했으니 하던 대로 하는 것일 뿐이다. 이유를 찾자면 어떤 이유든 나오겠지만 다른 방식이 부재해야만 할 필연적인 이유는 아직 들어본 적이 없으며 이후로도 들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없다.
한 달에 3회 연재든 4회 연재 후 1회 휴재든 시즌제이든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다양한 형식의 가능성을 열어두기에는 기존의 관성이 너무 강하다. 그저 몇몇 플랫폼마다 예외적 상황이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주간연재가 이렇게 관성적으로 그 체제를 공고히 하고 있음에 비해 주간연재가 주는 부담은 절대 적지 않다. 일주일 주기의 생활 패턴이 강제되면 며칠에 걸친 적당한 휴식도, 병마나 사고 등의 돌발적인 상황에 대한 대처도 어렵다.
투수가 공을 던지고 며칠 동안 어깨를 쉬어야만 하는 것처럼 창작 활동에도 휴지 기간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노는 시간이 아니다. 자료를 모으고 취재를 하고 삶의 경험을 쌓고 영감을 받을 작품을 접하고 아이디어를 정돈할, 업무에 필수적인 시간이다.
그리고 이 휴지 기간은 일주일 주기의 수준이 아니라, 프로야구에서 겨울이 되면 아예 경기가 없이 스토브 리그를 지내는 것처럼 장기간이 되어야 할 때도 있으나 이런 공백 기간을 가질 수 있는 작가는 무척 적다.


불꽃남자 권혁

 
3.
이러한 이야기를 배부른 소리로, 속 편한 소리로 여길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노동량의 문제는 결과론적으로 봐야 할 필요가 있다. 누군가가 일을 열심히 해서 그 결과 병이 들면 그건 누가 뭐라고 하든 혹사다.
프로야구의 투수들은 관리에 실패할 경우 기량이 떨어져서 2군으로 내려가거나 부상으로 마운드를 떠나거나 아예 수술 후 팀에서 방출되어 선수 생명이 끝나기까지 한다. 다른 무엇도 아닌 건강의 문제로 선수로서의 경력을 이어나가지 못한다면 그건 혹사를 당했다는 이야기다. 어떤 직종의 업무든 예외가 아니다. 벅찬 연재 일정으로 인해 작품의 퀄리티가 하락하고 병을 앓고 다음 작품을 준비할 여력마저 잃는다면 그건 그 자체로 지표가 된다. 그리고 현재 이 지표는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웹툰 작가들은 프리랜서고 또 프로이니 건강관리 또한 그들의 몫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러한 의무는 작가만이 아닌 작가와 플랫폼이 서로 합을 맞춰가며 지켜나가야 할 사항이다.
프로야구팀이 코치와 프런트를 통해 선수들이 컨디션을 잃지 않도록 도움을 주는 것처럼 말이다. 야구는 단 한판의 승부가 아니다. 장기적으로 시즌을 보았을 때 선수들이 기량을 유지하거나 그 이상으로 발전시켜나가는 것이야말로 팀의 승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웹툰 업계라고 다를 바 없다.
 
이러한 문제들을 그저 더 노력하고 더 악바리가 되라는 정신론으로만 풀어나가서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 김성근의 한화가 프런트와 팬덤의 막강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밑도 없이 좌초한 것에는 문제에 대한 답으로 더 많은 훈련과 근성만을 고집한 탓이 크다.
혹사 속에서 재능을 피우기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더욱이 스포츠 선수들에게 필연적으로 고령화로 인한 성적 하락이 따르는 것과 달리 창작자들은 세월과 경험을 쌓음에 따라 베테랑이 되고 거장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데, 지금처럼 작가군에게 여유가 주어지지 않는 형태로만 시장이 기능한다면 그 가능성을 이룰 작가들의 숫자는 줄어들기만 할 것이다.


시대의 역행은 성적의 역행으로 끝났다

 

4.
앞서 밑밥을 던져놓았으니 이제 구체적인 현안과 직접적 비교해보도록 하자. 굳이 기업명을 말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화제가 된 모 코믹스 말이다. 모 코믹스는 운영에 있어 사고를 다양하게도 쳤지만 가장 큰 핵심인 MG와 지각비 등의 계약과 관련한 사항만 꼽아보자. 자세한 내용은 이미 다른 기사들이 잘 다루고 있으니 이 글에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그럼에도 이 두 시스템은 위험부담의 상당량을 플랫폼이 아닌 작가 개인에게 떠넘긴다는 점에서 결코 간단히 넘길 수 없는 문제다.
 
어떤 이들은 MG 계약을 근거로 ‘잘 팔리지 않는 작가에게도 플랫폼이 돈을 주는데 배은망덕하다’며 부당한 비판을 하기도 한다. 모 코믹스 계약서의 불공정함을 따지는 건 뒤로 하더라도 출판 역사상 신인 혹은 비주류 작가에 대한 투자는 언제나 출판사의 역량이 시험받는 분야였다. 모 코믹스만 해왔던 일도 아니다.
이 기회비용이 부담된다면 운영을 달리하면 그만이다. 예상치 이하의 수익을 내더라도 계속해서 투자하고 싶은 작가가 있을 경우 고료를 줄이지 않는 대신 연재 분량을 줄여주거나 시즌제로 작업하길 권하는 방식으로 얼마든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야구에서도 모든 투수가 1군 선발로 경력을 시작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선수는 2군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1군에 뽑혀 조금씩 마운드 경험을 쌓는다. 패색이 짙은 게임이나 승리가 확정된 게임에 시험 삼아 기용되는 식으로 말이다.
이들이 비록 당장 만족할 성적을 내지는 못하더라도 장기적으로 팀을 운영해야만 하는 입장에서 신인육성을 위한 투자는 필수다. 하지만 신인 혹은 2군 선수를 다짜고짜 선발로 기용해서 아무리 얻어맞더라도 완투를 강제해 투수와 팀의 성적을 모두 망친다면 그건 투수의 실패가 아닌 감독의 실패다.
 
지각비는 더더욱 문제다. 연재작가가 정해진 기한 안에 결과물을 내지 못했다는 것은 자신의 루틴을 잃은 결과다.
애초에 지각이나 휴재로 작품이 노출될 기회가 줄어들면 가장 타격을 입는 것은 작가 본인이다. 좋아서 지각하고 휴재하는 작가는 없다. 휴재의 대명사 토가시 요시히로조차 드래곤 퀘스트가 아닌 무리한 연재 스케줄로 인한 투병생활로 장기 휴재를 반복하고 있다.
 
투수들은 부진하면 휴식 기간을 길게 받거나 2군으로 내려가 조정을 받는다. 하지만 만약 어떤 투수가 투구폼이 무너지거나 부상으로 인해 제대로 된 공을 던질 수 없는 상황에도 감독이 당장 성적을 위해 무리하게 그 투수에게 연투를 맡기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아니, 이게 다 네가 게으른 탓이라며 벌투마저 시킨다면? 그 선수는 아마 높은 확률로 시즌이 끝나고 수술대에 오를 것이다. 최악의 경우 마운드에 영영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결국 감독의 성과를 위해 투수는 착취를 당하고 선수 인생을 망치는 결말이 나온다. 정말이지 어디서 많이 본 이야기 아닌가? 상궤 이상의 부담을 작가들에게 떠넘기고 플랫폼은 내로남불하는 이 구조는 김성근식 운영을 넘어 토구치 토아의 원아웃 계약에서 독소조항만 남긴 형태로 보일 정도다.
 
이렇게 불균등한 구조에 대한 비판이 나올 때마다 김성근은 정신론을 강조하며 책임을 회피했다. 프로 선수라면, 팬들을 위해서라면 몸 바쳐 희생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과연 그의 밑에 있던 선수들이 다른 팀의 선수들에 비해 유독 더 게을렀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했던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애초에 선수의 성적은 바로 선수의 연봉으로 돌아온다. 돈을 더 벌기 싫어하는 사람도 없고, 작품이 더 잘나간다고 싫어하는 사람도 없다. 웹툰 작가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 이야기다.
 
여기에 더해 자신의 운영방침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다른 아이디어를 제안했다는 이유만으로 블랙리스트에 올려, 활약할 기회를 없애버렸다는 의혹 속에서도 별다른 사과 없이 아무 문제 없다며 언론 플레이를 하는 모 코믹스의 대처방식을 보노라면, 모 코믹스의 김성근 영입설을 진지하게 주장하고 싶을 정도다.



애초에 알면 안 되는 거였다
 

5.
2018년 한화 이글스의 과제는 무엇이 될 것인가? 김성근 감독 체제의 한화 이글스는 가을 야구 진출을 위해 유망주의 육성보다는 베테랑 선수 위주의 기용이 이루어졌고 그로 인해 팀의 고령화가 이어졌다.
하지만 이제 노익장 포수인 조인성과 차일목 모두 팀을 떠났고 언제 마무리가 될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팀 전체의 리빌딩은 반드시 해결해야만 할 과제로 남아있다. 그저 그 과정이 지난하지만을 않길 바랄 뿐, 지난 3년에 대한 값을 어떻게든 치르리라 많은 이들이 우려대로 흐를 것이다.
 
웹툰 업계는 어떠할까? 이 짧은 시간 동안 폭발적으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낸 이 시장에 섣불리 이렇게 저렇게 될 것이라 짐작을 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하지만 다만 바랄 수는 있다. 부디 더 많은 작가가 더 다양한 작품을 만들면서 돈과 건강 그리고 자아실현까지 다 성취했으면 좋겠다고, 현실적이든 현실적이지 않든 바라기는 해야 할 것이다. 작가도 플랫폼도 독자도 한마음 한뜻으로 나는 행복합니다,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2018년에는 야구 끊는다 진짜




 
   

영화배우 김꽃비의 팬. SF작가.

YOUR MANAⒸDCDC
만화 인용 _ 불암콩콩코믹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