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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라기 <며느라기> -인간의 품격에 대하여

기고 

 

며느라기의 <며느라기>
-인간의 품격에 대하여


페이스북 ‘며느라기 페이지’ 연재 중인 소셜 웹툰

 

 

박인하

 

페이스북 ‘며느라기 페이지’ -모든 것이 하나의 작품

2017년 5월 어느 날 페이스북에 민사린의 신혼 이야기를 담은 ‘며느라기’ 페이지가 생겼다.(www.facebook.com/min4rin)

2017년 10월 27일 현재 182,087명이 ‘좋아요’를 눌렀고, 무려 210,377명이 팔로우해 이 페이지를 구독하고 있다. 며느라기 페이지에는 만화 <며느라기>가 연재된다. 페이스북 페이지는 인물, 기업, 단체 등이 생성할 수 있는 계정이다. 작가는 민사린의 계정을 생성해 만화를 연재한다(페이지 어디에도 작가 소개는 나와 있지 않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 소셜 미디어를 활용해 만화를 연재하는 경우가 처음은 아니다. 웹툰 플랫폼이 아닌 소셜 미디어를 플랫폼으로 삼아 자신의 이야기를 발신하는 작가들이 꽤 있다. 작가 계정에 연재하거나, 아니면 만화 연재를 위한 계정에 연재한다. 전자의 경우 만화만 연재되지 않고 보통 소셜 계정처럼 운영되기도 한다. 후자의 경우 만화 연재 만을 위한 매체로 활용한다.

하지만 <며느라기>는 다르다. ‘며느라기 페이지’에는 작가가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분명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정체성은 감춰지고 며느라기 민사린의 정체성이 투사된다. 몇 컷의 만화와 함께, 사진처럼 표현된 한 두 컷의 이미지에 다양한 태그가 붙어 올라온다.




민사린이 출장을 가면, 출장지에서 찍은 사진이 태그와 올라오고, 이후 출장지의 이야기가 만화로 묘사되는 식이다.




사진 앱으로 편집한 것 같은 부부 사진을 올리고 “#부부스타그램”이라는 해시태그를 붙인다.




크리스마스 식탁을 그린 한 컷과 함께 ‘결혼하고 첫 번째 크리스마스, Merry Christmas! #크리스마스이브 #며느라기 #며느리 #webtoon #웹툰’ 정도만 표기하는 식이다. 이편은 9월 24일 업데이트되었지만, 만화와 글, 해시태그는 철저하게 크리스마스이브에 집중한다.



새해에는 정동진에서 일출을 바라보는 사진을 올린다.


몇 장의 인스타그램 컷 같은 장면들을 통해 독자들은 ‘며느라기 페이지’에 연재되는 만화를 만화가 아닌 민사린(으로 대표되는 여성들)의 사연으로 받아들인다.

발화자를 감춘 상태는 많은 독자가 민사린을 나 혹은 나와 연관된 누구로 몰입하기 수월하다. 그래서 작가의 의도대로 수많은 댓글이 붙고, 호출이 일어난다. 21만 명의 구독자가 바로 그 증거다. 작가는 웹툰 플랫폼으로 옮겨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페이지를 고집하고 있다.

페이스북 ‘며느라기 페이지’까지 전체적으로 하나의 작품이며, 작가는 페이스북 페이지 UX도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다(친구들에게 태그하기, 공유하기 등).



동그랗고 편안하게 생긴 2017  리얼리즘 캐릭터
며느라기 페이지의 소개를 보면 ‘민사린의 신혼 이야기’로 되어있다. 하지만 누구도 이 이야기를 민사린의 신혼 이야기로 읽지 않는다. 민사린은 무구영과 결혼한다. 결혼 후 첫 이벤트가 시어머니 생일이다. 한창 바쁘게 일하고 있는 민사린에게 시누이가 카톡을 보낸다.




시누이의 카톡

 

“언니~바쁘세요? / 내일 엄마 생신인 거 아시죠? / 오빠가 맨날 깜빡해서요.^^;”
민사린이 답한다.

“그럼요~ 식당도 제가 예약했는걸요. 잘 하는 대게집 예약했어요. 와, 벌써 먹고 싶네. (이모티콘) 내일 저녁에 봐요~~”
잠시 뒤에 다시 카톡이 울린다.

“그런데…내일 아침에 엄마 미역국 끓여 드리면 진짜 좋아하실 것 같은데… / (이모티콘)” (참고로 작가는 실재하는 이모티콘이 아니라 실재에 약간 가공을 거친 이모티콘을 사용하기도 한다)


여기서 한 화가 끊기고 다음 화로 넘어가며 민사린의 독백이 나온다.
“어머,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연재 화수로 따지자면 2화격인 1-2화에서 <며느라기>는 독자들을 치열한 논쟁의 장으로 끌어낸다. 페이스북 페이지의 소개에는 ‘신혼 이야기’로 되어있지만, 이 만화는 로맨스 코미디도, 로맨스 판타지도 아니다. 게다가 여러 TV쇼처럼 현실을 가장한 판타지를 보여주지도 않는다.

신혼생활의 고단함을, 시월드의 답답함을 토로한 뒤 달콤한 판타지로 덮으려 하지 않는다. 동그랗고 편안하게 생긴 약화한 캐릭터들은 루카치의 이론처럼 개성적이면서 전형적인 2017년 대한민국의 리얼리즘 캐릭터들이다.


신혼생활의 첫 에피소드가 시어머니 생일인데, 어느덧 이야기는 아침상까지 차려야 하는 상황으로 전개된다. 만화는 가상의 달달함 대신 처절한 일상으로 직진이다. 타인이었다가 부부로 살게 된 성인 남녀 만의 문제로도 복잡할 터인데, 거기에 가족이 개입한다. 게다가 그들은 가족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호의로 포장된 폭력을 행사한다. 

민사린은 어머니의 힘을 빌려 반찬을 준비해 생일 전날 시댁에 간다.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생일상을 준비하고, 아침을 먹는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 마침내 생일파티를 위해 민사린이 예약해 놓은 식당에 간다. ‘생신 전야’, ‘생신 아침’, ‘(드디어)생신파티’로 이어지는 에피소드를 통해 민사린과 독자는 낯선(혹은 익숙한) 경험을 한다.



<며느라기> -생신전야 편

 

생일 전날 찾아간 시부모님의 집. 사린과 구영 모두 직장에 다녀온 상황이지만 사린은 부엌에 가 과일을 준비해야 한다. 남자들은 소파에 앉아있고, 여자들은 노동을 한다. 아무도 잘못된 것인지 모르고, 오히려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민사린은 자신의 노동과 자본(마트에서 사온 잡채), 심지어 어머니의 노동을 빌어 시어머니 생일 아침상을 차린다.

시어머니가 북어 미역국을 좋아한다는 팁을 전해 준 시누이는 북어 미역국을 마시며 숙취를 해소한다. 뭔가 뒤틀려있다는 걸 알아차리지만, 남편 무구영은 무심하고, 스스로 뭔가를 결단하기에는 평범한 인물이다. 민사린도 불편하지만,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싸워서 모두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며느라기’라는 거울은 계속 우리의 모습을 비춘다
<며느라기>는 단지 제사나 명절에 쉼 없이 일해야 하는 여성들과 편하게 놀고먹는 남성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자기 집 제사를 아내에게 ‘도와준다’고 말하는 남편에게 시원하게 응징하는 사이다 서사도 아니다.




<며느라기> -설날 편

현실과 달리 남성은 경제활동에 나서는 생계 부양자, 여성은 가사와 육아에 전담하는 내조자로 고착화된 성 역할과 여기에 더해진 유교적 가부장제의 틀이 가족 구성원을 어떻게 서로 옭아매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남편, 아내, 부모, 자식, 시어머니, 시아버지, 시아주버니, 시누이, 동서 등 복잡한 호칭만큼이나 복잡하게 얽힌 가부장제 틀은 정도는 다르지만, 모두를 불편하게 옭아맨다. 구영의 여동생 미영이 사린에게는 무언가 요구하고, 불편하게 하는 존재지만 미영이 시댁에서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존재이기도 한 것처럼 말이다.
 
독자들은 사린이 각성하여 ‘큰 형님’처럼 시댁 행사에 데면데면 해 지기를 기대할 것이다. 남편 구영이 사린의 더 배려해 주기를 바랄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끝끝내 시원한 사이다 서사나, 남편의 변화 같은 달콤한 엔딩을 보여주지 않을 듯싶다. <며느라기>는 카타르시스를 향해 달려가는 장르 만화적 서사라기 보다는 다큐멘터리처럼 우리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며느라기> -제사 편


<며느라기>라는 거울은 계속 우리의 모습을 비출 것이다. 거울에 비친 우리 모습은 불편하고, 답답하며, 속 터질 것이다. 끝까지 사이다가 나오지 않더라도 <며느라기>라는 거울과 더 많은 사람이 마주해야 한다.

‘82년생 김지영 씨’로 상징되는 며느리들만 거울 앞에 서면 안 된다. 또 다른 며느리들, 그리고 모든 며느리와 함께 사는 아들들이 거울 앞에 서야 한다. 거울 앞에서 우리는 호의를 가장한 폭력과 마주해야 한다.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비극은 대개 호의에서 시작한다.
 
<며느라기>가 2017년 오늘의 우리 만화로 선정되었다. 작가 이름 ‘수신지’도 자연스럽게 노출됐다. <며느라기>는 책으로 출간된 것도 아니고, 웹툰 플랫폼에 연재된 것도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페이스북 ‘며느라기 페이지’에 연재되고 있을 뿐이다.

작가의 이름까지 감추고, 민사린의 신혼 이야기를 연재하는 작가의 뜻은 폭로(그리고 그 뒤로 이어지는 사이다 서사)가 아니라 성찰에 있을 것이다. 폭로 이후 사이다로 마무리하기에는 시대가 많이 변했다.

2017년은 ‘모든 것 내 탓’이라는 신파의 시대가 아니니 <며느라기>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은 가족의 비극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나. 아니, 정리할 수 있을까? 이 숙제는 <며느라기>라는 거울 앞에 선 우리의 몫이다.





박인하 20년간 만화를 연구해온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만화 평론가이자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콘텐츠스쿨 교수이다. 저서로 <만화를 위한 책>, <누가 캔디를 모함 했나>, <박인하의 즐거운 만화가게>, <박인하의 아니메 미학에세이>, <골방에서 만난 천국>, <만화공화국> 등이 있다.

 

YOUR MANAⓒ박인하

 

페이스북 <며느라기>

https://www.facebook.com/min4r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