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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의 게임화를 통해 본,   웹툰 기반 게임의 머천다이즈 속성에 관하여 

기고 

 

<덴마>의 게임화를 통해 본,
웹툰 기반 게임의 머천다이즈 속성에 관하여 

 

이경혁 

 

 

 

만화와 게임의 크로스 
 

만화와 게임은 여러모로 비슷한 범주로 묶이는 경우가 많다. 둘 다 서브 컬처의 영역에 함께 묶이고, 비슷한 이용자층을 보유한 사이다. 한국 사회에서 게임보다 선배 격인 만화는 지금 게임이 두들겨 맞는 것과 비슷한 주제로 60년대부터 먼저 매를 맞았다. 그런 점까지도 비슷해 보인다. 
 

1972년, 정병섭 군 자살 사건으로 인해 벌어진 만화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 현장이다. 이런 분서 사건이 이어졌다. 만화는 지금 게임이 받는 부정적 시선의 선배 격 매체다. 

 

유사한 두 매체 간의 미디어 크로스는 그래서 좀 더 쉽고 흥미롭다. 실제로 적지 않은 시도가 두 매체 사이에 이어지고 있다. 당장 한국 온라인 게임을 논할 때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나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인 <리니지>를 보자. <리니지>는 신일숙의 동명 원작 만화를 기반으로 출시된 게임이었다. 최초의 국산 MUG 게임이었던 <바람의 나라>, 스탠드 얼론과 MMORPG, 모바일 게임 등으로 다양하게 출시된 <열혈강호>처럼 인기 만화의 게임화는 보기 드문 일은 아니었다. 


 

한국 온라인 게임의 1세대인 <바람의 나라>(왼쪽)와 <리니지>는 모두 동명의 만화 원작을 발판 삼아 만들었다. 


 

이미 세상에 등장한 콘텐츠를 다른 영역에서 새롭게 만들 때의 의미는 좀 더 새로운 시각에서 해석하고 표현함으로써 완성된다. 만화의 게임화도 마찬가지의 입장에서 접근하고 평가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만화 기반 게임들의 성취는 사실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덴마>를 다루지 않는 <덴마 게임> 
 

눈에 보이는 현상으로 드러나는 아쉬움을 보자. 먼저, 원작 콘텐츠가 장르의 형식 안에 제대로 녹아들지 못한 문제다. 만화 기반 모바일 게임 대부분은 천편일률적인 모바일 네트워크 RPG게임 형식을 그대로 유지한다. 등장하는 캐릭터와 용어 정도만 원전 만화에서 가져다 붙이는 형태로 만든다.  

 

레벨업하는 플레이어를 기반으로, 만화의 주요 캐릭터들이 수집 가능한, 카드 캐릭터 형태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이 장비할 수 있는 아이템들이 함께 한다. 선형으로 구성된 각 스테이지를 순차적으로 클리어하는 것이 주요 과제로 주어진다. 이 과정은 간단한 조작과 스킬 사용이 구색으로 붙어 있긴 하지만, 곧 자동사냥이라는 레벨업의 목적에만 충실한 형식으로 이전된다.  

플레이어의 숙련도를 기반으로 하는, 돌파에 한계가 있는 난이도는 경험치 축적을 통한 레벨업과 아이템 보강으로만 극복 가능한 구조다. 
이를 빠르게 넘어서기 위한 아이템 결제와 자동사냥(자동사냥 기능 또한 아이템으로 판매되는 경우가 많다)이 강요된다. 전형적인 한국식 모바일 게임의 구조에서 벗어나는 경우는 드물다. 

게임의 구조가 고정되어 있는 상황에 얹어지는 만화 원작 콘텐츠는 그래서 제대로 녹아들지 못한다.  

 

‘국내 모바일게임 한장 요약’이라는 이름으로 커뮤니티에 돌고 있는 그림과 <덴마 with NAVERWEBTOON>과의 비교. 물론 <덴마> 게임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원작 SF만화가 품고 있는 세계관의 규모를 고려한다면, 게임화된 <덴마>는 아쉬운 부분이 많다. 

 

 

네이버 웹툰에서 상당한 성과를 보이는 양영순의 SF 웹툰 <덴마>는 독특한 세계관 설정과 종교, 사회, 철학을 아우르는 작품이다. 탄탄하고 폭넓은 스토리텔링과 오랜 연륜의 연출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만화 <덴마>로부터 파생된 모바일 게임 <덴마 with NAVERWEBTOON>에는 원작 만화에 매료된 팬덤으로부터도 좋지 않은 평가가 쏟아지는 상황이다. 

 

원작 만화에서 중심이 되는 퀑(물리적 오류로 인해 탄생한 초능력자)들의 전투는 게임에서 다루기 가장 좋은 소재였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게임 <덴마>가 표현한 퀑들의 전투는 일반적인 모바일 게임의 전투 구조에서 조금의 커스터마이징도 없는 형태 그대로 출시되었다. 단지 캐릭터들의 스킬창에 붙는 이름과 표현양식 정도만 바뀌었을 뿐이다.  

원작 만화 속에서 각광받았던 하이퍼 퀑의 콤비네이션 기술(여러 기술을 조합하여 시너지를 내는 방식)은 게임에서는 콤보와 같은 형태로 이미 구현 가능한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게임 <덴마>는 이러한 시도를 채택하지 않았다. 게임의 핵심 기능에 원작 콘텐츠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한 것이다. 

 

게임이 규칙을 통해 세계를 모사하는 매체임을 생각할 때, 이는 매우 치명적인 문제다. 단지 기존에 존재하는 보편적인 게임의 구조에 인기 만화 캐릭터를 덧칠해 출시했을 뿐이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대로 만화 <덴마>에 대한 어떠한 새로운 재현도, 관점의 전환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문화적인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사실 무의미하다. 

 

문화 양식을 잠식한 상품 양식으로서의 머천다이즈 게임 
 

게임의 규칙을 통한 세계의 모사가 전무한 <덴마 with NAVERWEBTOON> 방식은 오히려 대중문화 콘텐츠로서의 게임보다는, 다른 쪽에서 공통점을 발견한다. 바로 ‘머천다이즈’라고 불리는 상품 양식에서다. 

 

하나의 대중문화 콘텐츠가 인기를 얻으면 머천다이즈 상품들이 등장한다. 콘텐츠 제작사의 추가 수익과 콘텐츠 수용자들의 소유 욕구를 절충하면서 만들어지는 시장에 나타나는 상품 양식이다. 머천다이즈 상품들은 그 자체로 어떤 의미가 있기보다는, 의식의 영역에 자리하는 콘텐츠를 물화시켜 수용자에게 소유욕이라는 새로운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상품성으로서의 속성이 강하다. 

 

인기 온라인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의 머천다이즈 상품 ‘베인’ 피겨. 게임 속의 캐릭터를 직접 소유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대중문화 콘텐츠의 머천다이즈 상품은 자본주의 대중문화의 생산자와 소비자를 모두 만족하게 하는 아이템이다. 


 

게임화된 <덴마>는 그래서 게임 매체로 재해석한 <덴마>의 세계관을 플레이하며 얻는 만족감보다는 <덴마> 캐릭터 피겨를 구매하고 소유함으로써 얻는 만족감에 좀더 가깝다.  

게임 <덴마>는 원작 만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가상의 게임 세계에서나마 ‘소유’할 수 있고, 이를 강화할 수 있다는 만족감에 집중해서 만든 듯하다. 이게 목적이자 존재 이유다. 무리해서 신조어를 만들어 써 보자면, ‘머천다이즈 게임’이라고나 할까? 

 

원작이 없는 모바일 네트워크 게임에서도 이런 속성은 발견할 수 있다. 게임 매체를 활용해 규칙과 구조로 새로운 메시지를 던짐으로써, 수용자를 매료시키려고 노력하는 모바일 네트워크 게임은 주류 게임판에서는 찾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다시 말해 천편일률적인 지금의 모바일 네트워크 게임은 게임의 양식을 빌린 일종의 머천다이즈 상품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 그저 이 상품의 판매량 증대를 위해 마케팅 전략의 목적으로 유명 프랜차이즈의 지위에 오른 만화 IP를 활용하고 있다. 

 

문화 콘텐츠로서의 게임, 머천다이즈로서의 게임 

위와 같은 게임 제작 자체가 문제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중문화는 필연적으로 상품성을 가질 수밖에 없고, 매체 수용자이면서 동시에 체제의 소비자로 호명 받는 사람들의 소유욕과 그 욕구의 충족이 가치 없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 마땅한 정의와 분류가 사회적으로 공용화되지 못한 게임을 이야기하는 건 쉽지 않다.  
게임을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해 보자. 매체의 기능에 집중하여, 게임의 규칙과 논리로 세계를 재현하려는 게임과 상품적 가치에 집중하여 소유욕 충족이 목적인 머천다이즈 게임으로. 

 

게임을 용어나 개념을 통해 구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 둘의 구분은 불명확하다. 그래서 누군가는 게임으로 예술이 가능하다고 하고, 누군가는 예술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파친코나 만들고 있다며 코웃음 친다. 

 

우리는 독립영화와 상업영화, TV 광고를 영상 매체라는 하나의 의미로 읽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규칙과 상호 작용으로 가상의 세계에서 현실을 구현하는 수많은 작업을 ‘게임’ 이라는 단어 하나로 퉁 치기에는 부족하다. 그만큼 어려운 점이 많다.  

한국 주류 게임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게임을 문화예술로 인정해 달라는 한쪽의 목소리를 듣고 있을 때 드는 위화감은 뭘까? 게임이라는 단어의 용례 자체가 시장규모에 맞춰 점점 넓고 옅어짐에 따른 결과가 아닐까? 커진 시장만큼, 다양해진 게임의 용례만큼이나 단어와 용례를 구분하려는 노력 또한 필요한 시기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게임과 사회에 관한 글을 쓰고 강연을 다니고 있다.저서로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을 가지고 있으며 성균관대에서 <게임과 인문학> 이라는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YOUR MANAⒸ이경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