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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땡의 험난한 20세기 모험

기고 

 

땡땡의 험난한 20세기 모험 

 

시바우치 

 

땡땡의 인종 차별과 제국주의 찬양 


 


<땡땡의 모험 (Les Aventures de Tintin)>은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지고 대중적인 인기를 누린 20세기 유럽 만화 중 하나다. 프랑스-벨기에 만화(방드 데시네) 역사에도 중대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이다.  

 

젊은 기자 겸 모험가 땡땡은 애견 밀루와 알콜중독자 아독 선장과 함께 세계 각지를 여행한다. <땡땡의 모험>은 이렇게 신기한 경험을 하고, 곤경에 처한 이들을 돕기도 하는 모험극이다. 80여개 국어로 번역, 총 3억 부 이상이 판매되었다. 

 

2011년에는 스티븐 스필버그에 의해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 (The Adventures of Tintin: The Secret of the Unicorn)>라는 3D 애니메이션으로 영화화도 됐다. 한국에서는 다소 공교롭게도, 원작이나 영화가 아닌 박근혜가 ‘땡땡’의 팬이라는 이슈로 이 작품을 처음 접한 사람도 있었을 것 같지만 말이다. (링크)



 

육영재단이 출간한 <보물섬> 1982년도 창간호 표지에 ‘프랑스 모험만화 독점 연재 계약! 땡땡’이 유독 강조되어 있다. 



 

사실 한국 밖에서도 <땡땡의 모험>은 여러 가지 논란에 휩싸인 작품이다. 주로 문제시되는 것은 2권인 <콩고에 간 땡땡>의 인종 차별 및 제국주의 찬양 묘사이다. 국가에 따라서는 아직 판단력이 부족하고, 매체의 영향을 쉽게 흡수하는 어린이 독자에게 적합하지 않은 내용으로 간주했다. 성인용 서적 코너에 배치하거나 포장한 채로 연재 당시(1930-1931)의 식민주의적 배경을 설명한 경고문이 붙기도 했다.(링크)

 

 

작가 본인도 나중에는 <콩고에 간 땡땡>의 인종차별적, 제국주의적 묘사를 수치스럽게 여겼다. 1946년에 새롭게 그리고 채색한 단행본을 출간하면서 상당 부분을 잘라냈다. (링크)

 

 

사실 <콩고에 간 땡땡>은 30년대 유럽인의 아프리카 및 흑인에 대한 평균적인 관점을 반영했다. 당시에는 딱히 문제시되지 않았지만 작가가 스스로 이런 수정을 가했다는 점은 진보적인 일면이 있다. 하지만 그 태생적 한계 탓에 흑인을 유아적인 존재로 보는 근본적인 전제를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었다. 20세기 말부터 당연히 비판받게 되었다.  

 

 

연재 당시 벨기에 식민지였던 콩고 어린이들에게 ‘여러분 아버지 나라 벨기에’를 가르치는 장면은 수학을 가르치는 장면으로 수정되었다.  


 

<콩고에 간 땡땡>의 태생적 한계는 작가가 1930년대의 유럽인이었다는 점 외에도 연재 매체에 근거한다. <땡땡의 모험>은 1929년부터 1976년까지 발간된 초 장편 시리즈이다. 도중에 몇 차례 연재 매체가 변경되었기에, 각 단행본의 시대적 맥락을 고찰할 때는 연재 매체도 필수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땡땡은 1929년 벨기에의 극우 파시스트 카톨릭 신문 <벵티엠 시에클(Le Vingtième Siècle)>의 아동용 부록 <프티 벵티엠(Le Petit Vingtième)>에서 데뷔했다. <벵티엠 시에클>의 편집장 노베르 왈레즈 신부는 정치적 선전 목적을 위해 어린이에게 친숙한 만화 매체를 활용하고자 했다. 

 

그것을 위해 22세의 미숙한 젊은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만화가인 에르제(Hergé, 본명 조르쥬 레미)를 발탁했다. 왈레즈의 지시에 따라 제작된 최초의 땡땡 만화 <소비에트에 간 땡땡>은 소년 기자 땡땡이 하얀 애견 밀루와 함께 소련에 잠입해 공산당의 해악을 폭로하는 내용이다. 반공 책자의 내용을 그대로 채용한 노골적인 반공 선전만화였다. 

 

신문사 홍보 이벤트의 효과도 있어 <소비에트에 간 땡땡>은 큰 인기를 누렸고, 이어서 왈레즈는 젊은 벨기에인 독자들에게 당시 벨기에 식민지였던 콩고 진출을 독려하기 위해 <콩고에 간 땡땡>을 그리게 했다. 즉 땡땡은 우익 파시스트 제국주의 선전만화로 태어난 셈이다. 

(링크)

 

 

인종주의와 제국주의의 전환이 된 <푸른 연꽃> 




<푸른 연꽃>


 

하지만 땡땡이 내내 우익 선전 만화로만 남았다면 수십 년 동안 인기 시리즈로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에르제는 앞의 두 작품을 완성한 이후 평소에 관심 있던 미국을 배경으로 <미국에 간 땡땡> (1931-1932)을 연재했다. 물론 이 작품도 벨기에 파시즘 입장에서 미국의 상업주의를 공격하는 반미 메시지 선전 목적에 따라 용인되었다.  

 

서부극 및 갱 영화의 영향이 역력한 미국 대도시 묘사와 아메리카 선주민에 대한 온갖 스테레오타입적 묘사가 넘쳤다. 동시에 자원을 노리고 선주민을 무력으로 내쫓는 미국 백인 자본을 비판적으로 묘사하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푸른 연꽃>(1934-1935)은 자료 조사를 통한 외국 사회 묘사의 퀄리티 상승뿐만 아니라 제국주의와 서구인의 인종주의에 대한 비판적 관점으로 땡땡 시리즈의 중요한 전환점을 상징하는 작품이 되었다.  

 

땡땡의 다음 모험지가 중국이라는 예고를 본 루븐대학교 중국 유학생들이 대학의 소속 신부에게 에르제가 중국을 다룰 때 섬세하게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다는 우려를 표했다. 

신부는 에르제에게 유학생들의 의사를 전하고, 그중 한 명인 미대생 장총젠(张充仁)을 소개했다. 에르제는 장과의 우정을 통해 자신의 편견과 무지를 깨닫고 작품에도 그것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영향으로 <푸른 연꽃>에서 땡땡은 고아 소년 창총젠과 우정을 나눴다. 당시 일본은 서구인들에게 아시아의 선진 문명국가라는 긍정적인 이미지가 지배적이었는데,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는 비열한 제국주의 국가로 작품에 묘사되었다.  

 

<푸른 연꽃>은 비단 이러한 작가의 정치적 의식의 발전 외에도 1931년 중국을 배경으로, 땡땡이 중국 비밀 조직의 도움으로 국제적 마약 매매단을 소탕하는 그들과 결탁한 일제의 음모를 밝혀내는 박진감 넘치는 내용으로 대중적인 인기도 얻었다.  

 

<오토카 왕국의 지휘봉>(1939)은 연재 당시 독일의 오스트리아 합병으로 인한 벨기에의 불안한 정세를 반영했다. 땡땡이 가상의 발칸 반도 왕국 실다비아를 폭압적인 강대국 보르두리아의 정복 시도로부터 구하는 내용이다. 실다비아 왕국은 벨기에, 보르두리아는 나치 독일 및 무솔리니 정권의 이탈리아의 은유였다. 에르제의 왕정주의적 성향과 파시즘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이 작품을 통해 동시에 드러냈다. 

 



<유니콘 호의 비밀> 원작과 할리우드 영화판 


 

1940년 나치 독일은 벨기에를 점령하면서 <벵티엠 시에클>을 포함한 대다수의 언론사를 폐쇄했다. 에르제도 일시적으로 실업자가 되었으나, 독일인 경영진으로 교체된 신문 <르 수아르 (Le Soir)>에 채용되어 땡땡 시리즈를 지속할 수 있었다. <르 수아르>는 나치에 부역하는 매체면서 동시에 60만 독자를 지닌 벨기에 최대의 프랑스어 신문이었다. 에르제는 후자의 강점을 포기할 수 없었다.  

 

나치의 검열로 에르제는 땡땡 시리즈에서 기존의 정치적 색채를 제거하고, 기자였던 땡땡은 모험가가 되었다. 하지만 다소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기에 땡땡 시리즈 중 가장 널리 사랑받고, 해외에도 큰 인기를 끈 연작 시리즈 <유니콘 호의 비밀 (1942-1943)>과 <라캄의 보물>(1943)이 탄생했다.  

 

스필버그가 영화화한 작품이 <유니콘 호의 비밀>인 것도 그 대중적 인기를 반영한다. 이 2권은 쥘 베른의 영향을 받은 만화가 자크 반 멜케베크의 협력이 컸던 작품이다. 골동품 모형 배를 둘러싼 혈투가 17세기 해적의 숨겨진 보물을 찾는 해저 탐험으로 이어지는 광활한 모험극이다.  

 

또한 <르 수아르> 당시 에르제는 검열 때문에 정치적 소재를 피하고, 캐릭터 중심적 스토리에 집중하게 된 결과 다소 밋밋한 모범생 타입인 땡땡을 보조하는 동료 인물들을 등장시켰다. 입이 거칠고 지독한 알콜중독자이지만 마음씨는 고운 아독 선장과, 천재적인 발명가지만 어딘지 기묘한 성격과 어두운 귀로 의도하지 않은 소동을 일으키는 해바라기 박사가 바로 이 시기에 탄생한 캐릭터들이다.  

<라캄의 보물> 이후 땡땡 시리즈는 물랭사르 저택을 근거지로 삼아 땡땡과 밀루가 아독 선장과 해바라기 박사와 함께 활약하는 내용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시대를 초월하는 미학적 즐거움과 재미 

 

 


땡땡 잡지 


 

1945년 독일이 벨기에에서 후퇴하자 <르 수아르>의 모든 직원은 나치 부역 혐의로 체포되었다. 에르제도 체포되었으나 땡땡 시리즈가 정치적 메시지가 없는 어린이 만화라는 점을 참작해 무혐의로 풀려난다.  

 

그렇지만 나치 부역 신문에 근무했던 것은 사실이고, 인기 만화 <땡땡의 모험>도 신문 판매에 기여한 점이 있었기에 에르제는 블랙리스트에 올라 더는 일을 구할 수 없게 되었으며 사회적 규탄도 받았다.  

 

하지만 땡땡 시리즈를 높게 평가하고 아동/청소년용 잡지 창간을 기획하고 있던, 레지스탕스 투사 출신 출판업자 레이몽드 르블랑 덕분에 에르제는 다시 만화가로 복직한다. 땡땡 시리즈는 출판사 롱바르드(Le Lombard)를 통해 <땡땡 잡지>에서 새롭게 연재되었다.  

 

기존에 신문에서 흑백으로 연재한 후, 채색하여 단행본판을 내던 것과 달리 <땡땡 잡지>에서는 주간 2페이지의 컬러 연재가 요구되었다. 에르제는 벅찬 작업량을 분업으로 해결하기 위해 1950년에 스튜디오 에르제를 설립했다.  

 

스튜디오 에르제는 에르제 본인이 사망한 1983년 이후에도 남아있던 3년간 프로젝트 및 홍보용 작업물을 완성했다. 24권째이자 마지막 땡땡 책인 미완성작 <땡땡과 알파아트>(한국어 정식 발매판 <땡땡의 모험>도 총 24권이지만, 24권째는 <땡땡과 알파아트>가 아니다. 에르제가 감수했던 애니메이션의 오리지널 스토리를 배경으로 이용해 제작한 <땡땡과 상어 호수>다.)를 출간하고 문을 닫았다. 

 

이처럼 만화가 에르제와 땡땡 시리즈는 20세기 초중반 유럽의 풍파를 겪으며 살아남았다. 땡땡은 출판 국가나 시기에 따라서 여러 버전의 편집본이 존재한다. 앞서 말한 인종차별 논란 외에도 <검은 섬> (1937-1938)은 영국판 출판사가 영국 배경을 정확하게 묘사하지 못했다며 131개의 오류를 지적하여, 전부 수정되었다. 북유럽판에서는 <콩고에 간 틴틴>의 과도한 야생동물 사냥 묘사가 문제시되어 수정되었다.  

 

한편 <땡땡의 모험>은 강약과 굴곡이 없는 선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그림체로 유럽만화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후대에 명료한 선(ligne claire)으로 불리게 되었다. 또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린이들이 땡땡의 모험에 매료되었다.  

 

황당무계한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꼼꼼하게 그려진 현실 세계를 배경으로 각지를 탐험하며, 낯선 이국 문명을 접하고, 수수께끼를 푼다는 설정은 인기를 얻을만했다.. 

때로는 악당을 쓰러뜨리고 곤란에 빠진 이들을 구하는 정의로운 소년 기자/모험가인 땡땡의 활약은 당시 어린이 독자들에게 무척 독특하며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21세기에 <땡땡의 모험>은 어떤 의의를 지니고 있을까? 일단 미학적인 관점에서 보자. <땡땡의 모험>은 그림체와 색감은 개성적이며 아름답고, 빠른 전개와 인상적인 캐릭터 활용은 주간 페이스의 현대 웹툰에 익숙한 독자에게도 어필하는 요소가 있다.  

 

또한, 정의와 의리를 소중하게 여기며 인간의 선의와 지혜를 믿는 낙관적인 사상은, 현대 어린이 독자들에게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물론 외국 묘사는 당시로써는 최선을 다해도 현대적으로는 부족하거나 편협한 부분들은 있다. 많은 보호자가 사전에 자녀가 읽을 책을 충분히 조사하기는 하겠지만, 이런 오래된 고전은 특히나 주의를 기울여서 옥석을 가려내야 한다. 특히 <소비에트에 간 땡땡>과 <콩고에 간 땡땡>은 걸러내야 한다. 전자의 경우 작가가 컬러 판을 내지도 않았으며, 무엇보다 두 권 다 재미가 없다. 

 

성인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프랑스-벨기에 만화에 관심이 있다면 <땡땡의 모험>은 사실상 필독서이다. 현대인으로서 보기 고통스러운 초기작들도 당시 유럽의 사회상과 관점을 연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가치가 있다.  

 

무엇보다 작품과 작가의 변화 과정 자체가 창작자뿐만이 아닌 변하는 시대를 따라가기 버거운 성인에게도 일종의 교훈을 준다. <땡땡의 모험>에는 파시즘 및 각종 폭력적 권력에 대한 비판과 벨기에 왕정제를 향한 나이브한 애착이 공존한다.  

 

시혜적 시선에 머물기는 하지만 <카스타피오레의 보석>처럼 로마니 차별을 비판하기도 하고, <티베트에 간 땡땡>처럼 국가와 인종을 초월한 우정을 그리기도 한다. 이렇게 <땡땡의 모험>에는 시대를 초월하는 미학적 즐거움과 재미가 있다. 또 명백한 시대적 한계와 모순점이 타산지석이 되기도 한다. 이런 고전의 가치가 <땡땡의 모험>에 남아있다. 

 

*사족이지만, 홍대 앞에 한국 최초의 땡땡 숖이 생겼다! 각종 굿즈 외에도 솔 출판사의 정식 한국어판 <땡땡의 모험> 단행본을 전권 판매하고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들러보기를 권한다.(링크)




시바우치 만화연구가, 아마추어 만화가, 번역가, 전직 만화편집자. 만화 취향은 잡식성. 타가메 겐고로 한국 전시회/사인회 원합니다.

 

YOUR MANAⒸ시바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