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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는 어떻게 ‘나’를 드러냈을까?①

박인하의 만화스토리 히스토리 ①
 

만화는 어떻게 ‘나’를 드러냈을까?
바보와 악동 캐릭터로 시작한 근대만화

 

박인하

 
 
세계 만화의 역사를 살펴보자. 장르가 발전해 정점에 오른 시점에서 몇몇 작가들은 자신의 내면을 바라본다. 작가들이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고, 나를 드러낼 때 만화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했다. 만화는 어떻게 ‘나’를 드러냈을까? 근대만화의 시작점을 보고, 이후 만화 역사를 따라 올라가 본다.
 
근대만화는 시사 풍자화의 전통에 뿌리를 둔 우스개 만화로 시작되었다. 19세기 중반 만화는 살롱과 전단을 벗어나 신문, 잡지 같은 근대매체를 통해 중산층을 겨냥한, ‘계몽과 풍자의 길’과 노동자를 겨냥한 ‘우스개의 길’로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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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개 만화는 코믹, 퍼니스 등의 이름으로 불렸고 20세기 초반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앨리 슬로퍼’(위)와 ‘막스와 모리츠’(아래).

 


풍자의 길, 우스개의 글
 
1841년 창간된 <펀치(Punch)>는 계몽과 풍자의 길을, 1867년 창간된 <주디(Judy)>, 1874년에 창간된 <웃기는 사람들(funny Folks)>, 1883년에 창간된 <스크랩스(Scraps)>, 1884년에 창간된 <앨리 슬로퍼의 반나절의 휴일(Ally Sloper’s Half Holiday)> 등은 우스개의 길을 걸었다. 계몽과 풍자의 길은 카툰 혹은 시사만화가 되었고, 이야기 만화는 우스개의 길에서 시작되었다.
 
초기 우스개 만화의 주연은 악동과 바보였다. 1865년 독일 작가 빌헬름 부쉬(Wilhelm Busch)는 두 악동의 말썽을 그린 <막스와 모리츠(Max and Moritz)>를 발표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장난을 치던 막스와 모리츠는 맷돌에 갈려 오리 먹이가 되는 최후를 맞이한다.
 
바보 캐릭터의 원조는 잡지 <주디(Judy)>다. 1867년 8월 14일자에 등장한 찰스 헨리 로스(Charles Henry Ross)의 <대출과 할인의 몇몇 미스터리들(Some of the Mysteries of Loan and Discount)>의 주인공 앨리 슬로퍼(Ally Sloper)를 보자.

주정뱅이 특유의 붉은 코와 툭 튀어나온 배를 한 앨리 슬로퍼는 이브닝코트에 실크 모자를 쓰고 있지만, 집세를 받으러 오는 징수관(rent collector)을 피해 도망 다니는 술주정뱅이 바보다. 앨리 슬로퍼는 이후 <앨리 슬로퍼의 반나절 유일>이라는 잡지가 나오게도 했다.

캐릭터의 인기가 잡지를 만들고, 컵 같은 캐릭터 상품이 나오기도 했다. 빅토리아 시대 최고의 코미디 주인공이 된 앨리 슬로퍼는 만화뿐만이 아니라 광고 등에도 활용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만화는 이민자들과 함께 대서양을 건넜다. 19세기 후반 미국의 최대도시 뉴욕에서는 치열한 신문판매 경쟁이 벌어졌다. 신문판매 경쟁의 최전선에 나선 건 일요판 신문에 수록된 만화였다.



<뉴욕 월드> 일요판 <선데이 월드(Sunday World)>의 광고.

 


만화가 먼저 이 열띤 경쟁의 무기가 됐다. 한 선전 플래카드에는 “웃고 싶습니까? 정보를 얻고 싶습니까? 놀라고 싶습니까? 최신소식을 알고 싶습니까? 그러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새로운 편집 형식을 띠고 8페이지에 달하는 화려한 만화부록이 들어있는 <선데이 월드>를 읽으십시오.”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조지프 퓰리처(Joseph Pulitzer)는 1883년 <뉴욕 월드> 일요판 <선데이 월드(Sunday World)>에 컬러 부록을 신설해 신인 만화가들의 처녀작들을 싣기 시작했다.
 
리처드 펠튼 아웃코트(Richard Felton Outcault)는 1895년 5월 5일 뉴욕의 빈민가 호건즈 앨리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호건 골목의 서커스에서(At the Circus in Hogan’s Alley)>를 발표했다.

작가는 이 시리즈에서 커다란 귀에 노란 옷을 입은 꼬마, 미키 듀건(Mickey Dugan)의 옷에 재미있는 대사(주로 빈민가의 속어를 사용한)를 써넣었다. 주인공 미키 듀건은 동양인처럼 보이지만, 뉴욕 빈민가에 흔하던 아일랜드계 이민자 꼬마다.
 
아웃코트는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William Randolph Hearst)의 <뉴욕저널>로 자리를 옮긴 후 1896년 10월 25일자부터 <옐로 키드(The Yellow Kid)>라는 제목으로 이 작품을 독립시켜 연재했다. 빈민가에 사는 바보 꼬마 미키 듀건은 자학적 개그와 통쾌한 풍자를 넘나들며 인기 캐릭터로 부상했다.
 
<옐로 키드(The Yellow Kid)>의 미키 듀건은 <대출과 할인의 몇몇 미스터리들(Some of the Mysteries of Loan and Discount)>의 주인공 앨리 슬로퍼가 그랬듯이 각종 상품으로 제작되어 판매되었다.

바보 캐릭터인 노란 꼬마가 인기를 끌자 가족과 함께 함께 독일에서 시카고로 이주한 루돌트 덕스(Rudolph Dirks)는 어린 시절 즐겨 봤을 ‘막스와 모리츠’를 ‘한스와 프리츠’로 바꿔 1897년 12월 12일부터 <카젠야머네 아이들(Katzenjammer Kids)>을 연재했다.

‘막스와 모리츠’는 말썽 끝에 탈곡기에 갈려 오리의 먹이가 되어버렸지만, 카젠야머네 아이들인 ‘한스와 프리츠’의 장난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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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 덕스의 <카젠야머네 아이들(Katzenjammer Kids)>

 


1913년 1월 12일 미국의 신디케이트 킹 피쳐스(King Features)는 미국 전역에 조지 맥머너스(George McManus)의 만화 <아빠 기르기(Bringing Up Father)>를 배급한다.

100만 달러 경품에 당첨되어 벼락부자가 된 아일랜드계 이민 노동자 지그스(Jiggs)와 매기(Maggie) 부부가 주인공인 만화다. 부자가 된 메기는 어떻게는 지그스를 사교계에 적응시키려 하지만, 지그스는 조적공 시절 노동자 친구들을 만나 카드게임을 하며 콘비프를 먹는 걸 여전히 좋아하고 즐긴다.

조적공 시절 버릇이 툭툭 튀어나오는 지그스를 둘러싼 상류사회의 해프닝을 그린 <아빠 기르기>는 큰 인기를 얻었고, 한국과 일본의 근대만화에도 영향을 주었다.



만화로 통일된 ‘풍자 만화’와 ‘우스개 만화’

아소 유타카(麻生豊)는 <아빠 기르기>의 영향을 받은 우스개 네 칸 만화 <논키나토우산(ノンキナトウサン)>를 1922년 11월 26일부터 석간 <호치신문(報知新聞)>에 연재했다. <논키나토우산>은 실업자 주인공이 직장을 얻기 위해 노력하면서 경찰, 배우, 아나운서 등 다양한 직장에 취직해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룬 만화다.

<논키나토우산>이 인기를 끌자 아사히신문사는 1923년 4월 1일부터 <아사히 그라프(アサヒグラフ)>에 <아빠 기르기>를 <아빠 교육(親爺教育)>이란 제목으로 번역, 연재했다.
 
<아빠 기르기>와 <논키나토우산>은 1924년 10월 13일부터 <조선일보>에 연재된 <멍텅구리 헛물켜기>를 낳았다. 김동성이 기획하고, 이상협이 스토리를 노수현이 그림을 맡았다. 놀랍게도 한국의 첫 오락만화이자 코믹 스트립스인 이 작품은 지식인들의 조직적 분업에 의해 기획, 진행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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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멍텅구리 헛물켜기> 조선일보 1924

 


<멍텅구리 헛물켜기>는 경성의 모던보이들이 보여주는 허세, 말썽 등을 우습게 풀어냈다. 주인공 최멍텅과 윤바람은 ‘앨리 슬로퍼’, ‘옐로우 키드’, ‘지그스와 매기’로 이어지는 바보 캐릭터들이다. 이에 대응하는 여자 주인공 신옥매는 기생이다. 바보 모던보이와 기생의 조합은 식민지 근대의 서글픈 표정의 또 다른 모습이다.

<멍텅구리>는 ‘헛물켜기’를 시작으로 ‘련애생활(연애생활), 자작자급, 가 생활(가정생활), 세계일주’ 등으로 시리즈를 계속 이어나가 1927년 8월 18일까지 모두 703회가 연재되었다. 이 작품은 영화 제작사 반도키네마에서 영화로 제작해 조선극장에서 상영할 정도로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으로 이어지는 근대만화 탄생기의 작품들을 살펴보았다. 18세기 살롱에 전시되거나 전단을 통해 판매된 풍자화는 당대의 사실을 치열하게 담아내려 노력했다. 19세기 중반 싸구려 매체에 연재되기 시작한 우스개 만화는 우스개 캐릭터들의 놀라운 인기와 함께했는데, 이들은 바보이거나 악동이었다.
 
근대만화 탄생기의 작품들을 이야기할 때 ‘호건골목’ 시리즈가 최초의 만화인가 아닌가를 증명하거나, <옐로우 키드>가 첫 번째 컬러 만화라거나 <카젠야머네 아이들>에 말꼬리가 달린 말풍선이 처음 사용되었거나하는 이야기를 주로 언급한다.

하지만 근대만화가 정착될 당시 바보와 악동 캐릭터들이 왜 그렇게 놀라운 인기를 끌었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살롱에 전시된 풍자화나 커다란 전단에 섬세하게 인쇄된 풍자만화가 근대매체인 잡지 <펀치>로 연계되었지만, 결국 새로운 형식의 매체를 장악한 건 바보와 악동들이었다.
 
영국과 미국에서 이 새로운 형태의 발명품은 아무튼 ‘웃기는 것들’이었다. 영국과 미국에서 만화를 수입한 일본은 풍자만화를 ‘펀치화’로, 우스개 만화를 ‘만화’로 불렀지만, 결국 ‘만화’로 통일되었다.

살롱와 전단지의 풍자화는 독자인 부르주아의 눈높이에 맞춰 현실을 풍자했다. 때문에 그 안에 바보나 악동이 설 자리가 없었다. 하지만 우스개 만화가 실린 영국의 싸구려 매체나 미국의 일요판 신문 모두 새로운 독자인 노동자를 겨냥했다. 신문이나 잡지를 동전 한두 개로 사서, 하루의 스트레스를 푸는 노동자들은 자신들과 같은 처지의 주인공들이 익숙했다.
 
만화 주인공인 바보들은 가끔 천재적인 발상으로 부르주아 계급을 골려주기도 했다. 하지만 독자들이 처한 가난과 불행의 현실은 바보들의 우스꽝스러운 행동 뒤에 숨어있었다. 바보와 악동들의 일탈은 불온해 보였지만, 안전했다. 작가와 독자가 현실을 공유하기 위해서 더 시간이 필요했다.
 




 

박인하 20년간 만화를 연구해온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만화 평론가이자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콘텐츠스쿨 교수이다. 저서로 <만화를 위한 책>, <누가 캔디를 모함 했나>, <박인하의 즐거운 만화가게>, <박인하의 아니메 미학에세이>, <골방에서 만난 천국>, <만화공화국> 등이 있다.



YOUR MANAⓒ박인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