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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수씨 이야기>, 어떤 사람이 인류 말살의 버튼을 누르는가

기고


어떤 사람이 인류 말살의 버튼을 누르는가
<김철수씨 이야기>, 수사반장, 레진코믹스

 


한상정 비서1)


 

1)다음에서 연재 종료된 후, 텀블벅 후원을 한 적 있었다. 작가는 이 당시 후원자들을 등장인물로 활용했는데, 필자는 구디제약의 비서 역할이었다. 아쉽게도 항상 통화 속에만 등장했기에 모습은 없다.



 

당신, 참 고맙다. 6년 8개월에 걸쳐 결국 우리에게 와줬다. 그러잖아도 느린 걸음걸이에, 눈에 띄는 어느 것 하나 버리고 오지 못하는 성품에, 오늘 길만 생각해도 버겁거늘 역사와 사회까지 모두 거느리고, 중간에 지루해지지 않도록 아주 여린 웃음까지 짓게 하며.

처음부터 만났던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야 너무나 길었지만, 이제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겐 아마 금방 끝날 것이다. 적어도 처음의 일별은 말이다. 서사의 속도가 느린 것은 수사반장의 특징이다. 어쩌면 그래서 필명이 수사반장일지 모른다. 범인을 잡아내기 위해 이런저런 모든 자료를 뒤지고, 현장을 확인하고, 목격자와 진술자들을 일별해야 하는 것처럼, 그의 작품들은 그의 필명을 닮았다.

꼭 첫 작품이라서 그런 건 아니다. 시나리오를 맡은 <살인마 vs 이웃> 역시 벌써 100화를 넘긴 지 오래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스타일이 비슷한 걸 보면, 그냥 성격이다. 작업을 더 많이 하게 되면 달라질지 모르나, 뭐, 어떤가. 이런 스타일의 작가가 한국만화계에 한 명 존재하는 것도. 중요한 것은, 독자들을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하는 힘을 가진 작품이라는 것 아닌가.

아무래도 연식도 있고, 꼰대화가 진행 중이라 그냥 일상적인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다. 일상에서 시작하는 것은 좋으나 그것으로 끝나는 서사들은 취향이 아니다.

무거운 것이 좋다. 그 무거움엔, 이런 세상 따위, 이런 쓰레기 같은, 악마 같은 인간들이 모두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의 외침에 대한 나름의 접근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특히나, 현재의 시국은 우리에게 물어보지 않는가. 이 부패와 적폐는 어떻게 축적됐는지, 더 잘 살고 싶고 더 많은 것들을 가지고 싶다는 그 출발들은 우리의 욕망 안에는 존재하지 않았는지.

주인공 김철수. 이름부터 얼마나 평범한가. 요즘도 국어책에 철수와 영희가 등장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절대 평범하지 않은 이 김철수의 삶을 탄생부터 목도한다. 아마도 1970년대 생. 버림받은 여인에 의해 태어날 때부터 버려졌다. 쓰레기처리장에 버려졌고, 계속 버려졌고, 제정신이 아닌 언어 쟁아인 헤헤 엄마에게 발견되어 키워지다 결국 버려졌고, 보육원에서 만난 첫사랑 영희에게는 배신당했다. 모두가 그에게 따뜻하게 손을 내밀었다가, 결국은 그에게 등을 돌렸다. 보육원이 불탄 후 잠시 가 있었던 성당의 신부님, 입양되어 갔던 집에서 만난 복순 아줌마, 감옥에서 만났던 학생운동 하던 동년배들까지.

버려졌다는, 그래서 태생적으로 너무나 무거운 고독, 세상에 혼자밖에 없다는 그 감정과 익숙해져 있었던 그가 계속 외로웠다면 좋았을 지도 모른다. 잠시 맛보았던 따뜻함은 김철수 씨로 하여금 세상의 모든 인간을 없애버리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 고독을 만든 것은, 환경도, 격변하는 사회도, 사회시스템도 아닌, 단지 그 속의 인간들이 문제였다고 결론지었기 때문이다.

그만큼이나 커다란 복수심은 사실, 그만큼만이나 커다란 기대와 애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모든 인류를 학살할 바이러스를 만든 후에야, 그리고 그것을 설치한 이후에야, 김철수는 자신을 지금까지 몰아붙였던 과거를 점검하기 시작한다.

김철수는 도저히 알 수 없었지만, 독자들은 친엄마가 그를 버렸던 이유, 70년대에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여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협함, 그리고 그녀가 얼마나 그 사실을 괴로워하며 사는지도 알게 된다.

헤헤는 70년대 간첩사건의 희생자였다. 고문으로 유산하고, 자신의 자백 때문에 남편도 죽게 되자 미쳐버렸다. 경찰들이 찾아오자 또다시 발작하여 철수를 버리고 도망갔던 것이다.

철수의 첫사랑 나영희도 마찬가지. 영희 아버지는 자신이 저질렀던 죄과를 해결하기 위해 나영희를 고아원에 두고 간다. 사실 그는, 헤헤를 고문한 경찰 중의 한 명이다. 이름을 바꾸고 아버지를 기다리던 영희는 불을 낸 사실을 보육원 원장이 알면 쫓겨날까 봐, 철수가 했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러고는 철수의 뒤를 평생 챙겨본다.

뒤로 가면 갈수록, 이전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다시 등장한다. 한번 등장하고 더는 등장하지 않을 줄 알았던 인물들도 다시, 다른 식으로 등장한다. 김철수에게 받은 것을 돌려주기 위해, 김철수에게 상처 입히거나 해악을 끼친 것을 반성하기 위해서. 사랑받을 만한 일들을 해온 김철수는, 당연히 사랑받고 있었다.


다음 연재 시 폰트(좌)와 레진 연재 시 폰트(우)



김철수는, 자신을 끝없는 고독의 암흑에 집어넣은 인류의 말살을 위해, 오로지 이 목표를 위해, 주변의 다른 그 어떤 것들도 보지 않는다. 이것이 죄가 되냐고? 당연히 죄가 된다. 심지어 그 목표가 인류 말살이지 않은가.

우리는 국가의 번영과 행복을 최고의 가치로 두고, 주변의 그 어떤 것도 들으려고 보려고 하지 않았던, 그 피와 복수의 반복된 역사를 여전히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김철수는 본성은 선했으므로, 그 대가를 스스로, 기나긴 감옥살이로 갚는다. 착한 작품이다.

주인공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그 누구도, 완벽한 악인은 없어 보인다. 김철수의 언어 장애인 엄마를 고문했던 강경식 서장도, 자식만은 자신의 목숨도 내어줄 정도로 사랑한다. 최악인 상사도, 마지막 순간에는 어머니에게 고통 받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들이 잘했다는 것은 아니며, 그러니 용서받아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단지, 우리가 인간들에 대해, 우리의 역사에 대해, 생각과 선택과 판단과 행동에 대해, 사적 관계와 공적 책임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성찰할 것을 요구해야 하지 않을까?

단 한 명의 인간도, 인류를 멸망시킬 꿈과 실행력을 갖출 수 있다. 그를 거기까지 밀어붙였던 것은 고독과, 어리석음과, 결코 잊어버리면 안 될 역사적 사건들과, 그 속에 엮여있었던 익명의 우리였다. 그를 구해낼 수 있는 것 역시, 한 명의 사랑과 익명의 우리인 것이다. 우리의 성찰만이 그 무시무시한 광기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게 만들지 않을까?


 
<김철수씨 이야기>는 스토리나 메시지도 흥미롭지만, 천천히 연출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다. 다음 연재 버전과 레진 연재 버전을 비교해보면, 확실히 새롭게 정리한 부분들도 있다. 어느 쪽 연출이 더 좋다고 판단하기 어렵지만, 폰트만은 다음 연재 버전이 그림체와 훨씬 더 어울린다.

책이 출판되면 또 다른 방식으로 갈무리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 바로 레진 연재 버전으로 만나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러다가 종이책으로 출판되면, 다시 한 번 만나도 새로운 인상을 줄만한 풍성한 작품이기도 하다.








다음 연재 시 25화의 한 장면(좌). 레진 연재 시 두 화면으로 분할했다(중,우).



 

한상정 박사학위 취득하고 귀국하며 올해는 꼭 만화개론서를 내야지 하다 벌써 10년을 보내버린 만화연구자. 현재 인천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문화대학원에서 근무 중. 



YOUR MANAⒸ한상정

  

 

<김철수씨 이야기>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