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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웹툰의 변별적 특성

기고

스콧 맥클라우드 초청 토크쇼 발제문

한국 웹툰의 변별적 특성 

 

박인하

 
 
 
 
 
 
1. (한국)웹툰의 특징과 개념 

웹툰에 대한 가장 일반적 인식은, 웹툰은 디지털 만화의 하나로 ‘출판 만화(인쇄 만화) → 디지털 만화 → 인터넷 만화(온라인 만화) → 웹툰’의 과정을 거치며 우리나라의 디지털 환경에서 적응해 등장한 매체(혹은 장르)라는 인식이다.

디지털 만화는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초반, 개인용 컴퓨터에 그래픽 소프트웨어가 보급되면서 제작 기능에 디지털화가 처음 시도되었다.

1990년대 중반에는 CD-ROM과 같은 대용량 저장매체에 저장하여 유통되거나 아니면 기존 만화의 디지털화를 통해 저장하는 아카이브 기능이 도입되었다.

199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통신 인프라가 깔리고 디지털 유통이 시작되었는데 2000년대에 접어들자 디지털 만화는 웹 환경에 적응했다. 세대별 구분은 유사하지만, 디지털 만화가 인터넷 만화로, 인터넷 만화가 웹툰으로 순차적으로 변화한 것은 아니다.

 

(1)디지털 만화는 ‘디지털로 제작되거나 제작, 유통, 소비되는 만화’를 모두 포괄한다.

(2)인터넷 만화는 인터넷에서 구독할 수 있는 모든 만화다. 출판되었던 만화를 스캔하여 파일 형태로 만든 후 인터넷에서 서비스한다면 인터넷 만화로 구분한다.

(3)웹툰은 디지털로 제작, 유통, 소비된다는 측면에서 디지털 만화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서비스되는 측면에서는 인터넷 만화다. 즉, (1)과 (2)의 성격을 모두 포괄한다.
 

웹툰은 디지털 만화나 인터넷 만화라는 용어 규정에 포함되지만, 디지털 만화나 인터넷 만화의 동의어가 아니다. 웹툰은 디지털 만화나 인터넷 만화와 다른 웹툰만의 고유한 특징을 갖고 있다. 탄생부터 웹의 성격에 맞게 등장했고, 웹의 성격에 맞게 진화했기 때문이다.

 
 
 

웹툰은 디지털 만화나
인터넷 만화와 다른 웹툰만의
고유한 특징을 갖고 있다.

탄생부터 웹의 성격에 맞게 등장했고,
웹의 성격에 맞게 진화했기 때문이다.

 

 

웹툰을 규정하는 웹(web)의 성격은 ‘가장자리에서 연결’이다. 지금은 포털의 웹툰 서비스에 익숙하지만, 초기 웹툰은 작가의 홈페이지나, 게시판 등에 연재된 작품이 네트워크를 통해 ‘공유’되어 ‘소비’되었다.

포털의 웹툰 서비스도 초창기 웹툰의 특징을 여전히 갖고 있다. 스마트폰을 통해 인터넷 소비가 일상화된 한국의 독자들에게 웹툰은 가장 간편하게 소비할 수 있는 디지털 콘텐츠가 되었다. 이를 통해 한국의 웹툰은 일상성, 공유성, 그리고 상호작용성이라는 고유한 특징을 구체화했다.

 
 

2. (산업)생태계적 측면의 변별성 : 콘텐츠 모형과 트래픽 모델

2016년 한국만화에는 콘텐츠 모형과 트래픽 모형이라는 생태계의 두 모형이 존재한다. 콘텐츠 모형은 작가가 콘텐츠를 만들어 매체를 기반으로 독자에게 선보이고, 독자는 비용을 지불하여 이를 구입해 소비하는 생태계다.

우리에게 익숙한 생태계 모형으로, 좋은 작가를 발굴해 독자에게 선보이는 매체가 필수적이다.

매체에는 편집자가 있어 독자의 성향을 파악하고, 독자의 성향에 맞춰 매체에 특성을 부여하며, 이에 맞는 작가를 선발한다. 독자는 매체를 통해 작품을 소비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매체에 수록된 콘텐츠다. 따라서 매체의 편집자는 좋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한국만화는 전통적으로 콘텐츠 모형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많은 트래픽이 발생하며
웹툰을 구독하는 독자들의 사용자 경험이
쌓이면, 평판이 확대되고,

더 많은 사용자가 모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90년대 이후 한국만화산업은 ‘잡지 연재 → 단행본 출간 → TV 애니메이션 제작 → 극장판 애니메이션 제작 → 캐릭터 머천다이징’처럼 순차적으로 확산되어야만 한다는 환상을 쫓기 시작했다.

성공한 작품은 모두 애니메이션화나 게임화를 고민했고, 원 소스 멀티 유즈(OSMU)라는 정체불명의 조어가 등장했다.

2000년대 들어 웹툰과 함께 트래픽 모형이 등장했다. 트래픽 모형은 방대한 트래픽(인터넷 방문자의 방문)이 가치를 만들어내는 전형적인 스마트 경제의 모형이다.

초기에 포털 사이트에서 서비스하는 웹툰은 더 많은 사용자를 포털로 유도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많은 트래픽이 발생하며 웹툰을 구독하는 독자들의 사용자 경험이 쌓이면, 평판이 확대되고, 더 많은 사용자가 모이기 시작했다.

이를 기반으로 웹툰은 단지 포털의 트래픽을 확대시키는데서 머물지 않고 웹툰 스스로 광고 모델, 유료 구매(미리보기, 완결작 유료)를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했으며, 최근에는 지식재산(Intelletual Property)의 핵심으로 각광받고 있다.

 
 

3. 생산적 측면의 변별성 : 디지털 기술의 활용

대다수의 웹툰 작가들은 디지털로 창작한다. 90년대 후반 만화 작업에 디지털 공정이 도입되면서 종이에 데생을 하고 이를 스캔해 그래픽 소프트웨어에서 후반작업을 진행하던 방식에서 한발 더 나아가 대부분의 웹툰은 모든 공정을 디지털로 진행한다. 많은 웹툰 작가들이 콘티나 밑그림도 직접 그래픽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디지털로 작업한다.

 최근 디지털 입력 장치나 소프트웨어의 성능이 향상되고, 가격이 저렴해지면서 만화 수작업의 마지막 보루였던 잉크와 펜도 사용하지 않는 작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최근에는 3D 기술이 적극적으로 도입되었다. 웹툰 작가들은 공개된 3D 소프트웨어인 스케치업을 활용해 작품의 3D 소스(배경과 소품)을 제작해 이를 작품에 활용하고 있으며, 인물도 3D로 제작하는 작가(천계영)도 있다.

디지털 작업의 가장 큰 특징은 작업 데이터의 재활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는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수작업과 다른 진보를 가져왔다.

첫 번째, 레이어의 활용을 통해 작업의 효율성을 극대화한다. 수작업일 경우 처음부터 다시 그려야 하지만, 디지털 작업은 바로 앞 단계로 전환할 수도 있고, 잘못된 부분만 폐기할 수도 있다.

두 번째, 데이터의 재사용이 가능하고, 따라서 부분적으로 작업을 나눠서 할 수 있다. 특히 이 부분은 배경 작업에서 다양하게 활용된다. 많은 웹툰 작가들이 배경이나 기타 소품의 디지털 소스를 만들어 재사용한다.

 

 
 

디지털 창작을 기반으로 숙련에 대한
부담 없이
자유롭게 참여하는
웹툰 창작의 특징은 생산과 소비를 이어주는

웹툰 특유의 상호작용성으로 나타난다.

 

 
 

디지털 작업의 효율성은 좀 더 많은 작가들이 웹툰 작업에 참여하도록 유도했다. 네이버의 경우 누구나 웹툰을 올릴 수 있는 도전만화 게시판에서 활동하는 작가가 무려 14만 명이다(2015년 1월 기준).

개인 홈페이지나, 소셜 미디어, 커뮤니티 사이트 등에 올리는 웹툰을 포함하면 그 범위는 더 넓어진다. 디지털 창작을 기반으로 숙련에 대한 부담 없이 자유롭게 참여하는 웹툰 창작의 특징은 생산과 소비를 이어주는 웹툰 특유의 상호작용성으로 나타난다.

웹툰의 상호작용성은 디지털 작업으로 인한 창작의 수월성 이외에도 디지털 작업이 도입한 다양한 인터랙티브 효과 등을 통해서도 구현된다. 디지털이라 가능한 인터랙티브나 이펙트도 다양한 기술의 진화를 통해 웹툰에 접목되었다.

이충호는 <이스크라>에서 독자의 투표를 통해 중요 인물의 그다음 운명을 결정했다. 호랑은 HTML 태그를 활용한 여러 효과(노래, 내레이션, 애니메이션)를 웹툰에 삽입했다.

특히 2011년 7월 21일 발표한 ‘2011 미스터리 단편’ 중 한 편인 <옥수역 귀신>은  디지털 이펙트가 스크롤 웹툰, 그리고 특정 장르와 만나 어떻게 거대한 효과를 낼 수 있는가를 보여준 작품이었다.

이종범의 <닥터 프로스트>는 배경음악을 작품에 효과적으로 결합시켰다. 별도의 OST가 나오고, 이를 음원사이트를 통해 발매가 되기도 했다. 환쟁이 작가의 <기사도>는 음향과 움직임을 웹툰에 가장 적극적으로 결합시켰다.

 

4. 소비적 측면의 변별성 : 웹툰의 확산성

인터넷 소비 환경이 스마트폰으로 넘어가며, 이동시간이나 휴식시간 같은 짧은 여가시간에 스마트폰을 통해 여가를 즐기는 사용자들이 늘어났다. 웹툰이 스마트폰에 알맞은 콘텐츠로 자리 잡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세로 스크롤’이라는 형식적 특징에 있다.

페이지 만화와 웹툰의 확연한 차이는 독자에게 보이는 방식이다. 페이지 만화는 ‘고정된’ 페이지를 활용해 단면이나 양면에 전시(display) 된다. 전시된 물리적 크기는 동일하고 모든 독자에게 같은 크기의 같은 내용을 보여준다.

반면 웹툰은 스크롤 되며 PC나 스마트폰 화면에 전시된다. 전시된 물리적 크기도 기기에 따라 제각각이고, 내용도 스크롤하는 독자에 따라 제각각이다.

페이지 만화는 반복된 독서를 통해 형성된 독서경험을 통해 순서대로 칸을 읽어나간다. 그러다 보니 중요한 것은 작가의 의도에 따라 칸과 칸이 독자들에게 읽힐 수 있도록 배치하는 연출이다. 순서대로 읽어갈 수 있게 하는 가장 중요한 연출 원칙은 ‘균형’이다.

하지만 웹툰은 다르다. 페이지 만화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보이는 칸과 페이지가 있지만, 웹툰은 기기 아래로 스크롤 하는 독자의 속도에 따라 모든 독자들에게 다르게 보인다.

그래서 칸과 칸, 그리고 페이지의 균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위와 아래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이다. 즉, 각기 다른 독자들의 독서 경험에 맞춰 가장 유사하게 이미지를 읽어 내려갈 수 있도록 배치해야 한다.

 

 

페이지 만화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보이는 칸과 페이지가 있지만,
웹툰은 기기 아래로 스크롤 하는
독자의 속도에 따라

모든 독자들에게 다르게 보인다.

 

 

또한 페이지 만화는 한정된 페이지에 이야기를 펼쳐야 한다. 작가에게 주어진 페이지는 매체의 자원이기 때문에 최대한  효과적으로 균형을 잡아 페이지를 활용한다.

하지만 웹툰은 페이지의 한계가 없다. 출판만화는 페이지 단위로 원고료가 책정되지만, 웹툰은 회 단위로 책정된다. 독자들의 감정을 반복해 고양시켜 많은 댓글과 좋은 평점을 받으면 이후 원고료가 상향된다.

따라서 웹툰은 독자의 스크롤 속도에 맞춰 작가의 의도를 전달하기 위한 연출을 한다. 요약하자면, 고정된 지면을 활용하는 출판만화의 연출은 ‘균형’이고, 웹툰의 연출은 ‘속도’가 된다.

속도를 위해 웹툰은 특유의 연출 문법을 만들었다. 페이지 만화에서 칸 안에 들어있던 말풍선을 칸 바깥으로 분리했으며, 중요 시각 정보를 가운데로 집중시켰다.

또한 출판만화처럼 복잡한 시각 정보를 대거 삭제하고, 컬러를 도입해 이미지의 명확성을 높였다. 이 같은 변화로 가독성이 높아졌고, 독자들은 스마트폰을 통해서도 어렵지 않게 웹툰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웹툰 연출의 또 다른 특징은 작가가 1인칭으로 등장해 자신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법을 통해 구현된다. 독자들은 개인화된 작가를 통해, 개인화된 정보를 받아들인다. 가독성 높은 디자인은 편하고, 빠르게 독자들이 웹툰을 보게 하기 위한 방법론이다.

개성이 넘치는 그림보다는 보편적인 그림이 더 선호되고, 디자인적 요소들을 활용해 캐릭터의 특징을 구분할 수 있게 한다. 독자에게 빨리 어필할 수 있는 새로운 소재의 발굴은 필수적이다.

웹툰 독자들은 게시판에 댓글을 달고, 별점을 주며 작품에 반응한다. 이를 통해 작품의 전개에 영향을 끼친다고 믿는다. 포털 사이트에서 웹툰이 정식으로 연재되기 위해서는 먼저 아마추어 게시판의 연재를 거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아마추어 게시판에 연재되는 작품에서도 팬덤이 형성된다.

네이버의 경우, 팬덤이 활성화되고 조회 수가 좋은 작품은 도전 게시판에서 베스트 도전 게시판으로 승격하고, 정식 연재작으로도 선정한다. 도전 게시판에서부터 형성된 팬덤은 연재된 만화를 지지한다. 웹툰은 독자와 인터랙티브를 통한 팬덤을 창출하고, 결국은 트래픽을 확대해 나가는 매체로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다.

 

 

5. the Future was Here

만화의 미래에 대한 여러 상상이 있다. 흥미롭게도 한국의 웹툰은 만화의 미래에 대한 많은 모습을 여기서 확인시켜 줄 것이다. 개념은 물론 산업적 측면, 생산적 측면, 소비적 측면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웹툰은 기본적으로 디지털로 제작, 유통, 소비한다. 디지털 기술은 웹툰의 다양함을 확대시키고 있으며, 이는 결국 새로운 미학의 모색으로 이어진다.

잡지나 책이 아닌 PC나 스마트폰을 통해 만나는 웹툰은 디스플레이의 차이에 따른 이질적 독서 경험을 제공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작가들은 의도적으로 컬러를 도입하고, 간략한 작화와 연출을 도입했다.

간략한 작화와 연출은 더 많은 작가들의 유입으로 이어졌으며, 휘이 작가의 <숨비소리>(레진)나 단지 작가의 <단지>(레진)처럼 개인적 상처를 털어놓는데도 기여했다. 또한 이종범의 <닥터 프로스트>(네이버)처럼 장르의 틀 안에서 사회적 문제에 다가가기도 한다.

 
 
 
 

웹툰은 기본적으로
디지털로 제작, 유통, 소비한다.

디지털 기술은 웹툰의 다양함을
확대시키고 있으며,
이는 결국
새로운 미학의 모색으로 이어진다.

 
 
 

웹툰의 등장으로 한국에서 만화는 더 이상 소수 마니아들을 위한 문화가 아니게 되었다. 가장 편안하게 소비할 수 있는 스마트 콘텐츠이며, 때문에 한국인 3명 중 1명이 매일 보고 있는 일상적인 콘텐츠가 되었다.

웹툰은 자기 고백, 가벼운 농담, 사회문제에 대한 진지한 접근, 호쾌한 액션, 다양한 장르, 성인들을 위한 섹슈얼리티, 정치나 사회운동, 광고와 홍보의 영역까지 광대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영화, 드라마, 팬시 등과의 연계와 같은 IP 비즈니스의 핵심으로 각광받고 있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빠르고, 현란하며, 급격한 변화가 오늘 한국에 있다.

 
 
 

 

박인하 20년간 만화를 연구해온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만화 평론가이자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콘텐츠스쿨 교수이다. 저서로 <만화를 위한 책>, <누가 캔디를 모함 했나>, <박인하의 즐거운 만화가게>, <박인하의 아니메 미학에세이>, <골방에서 만난 천국>, <만화공화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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