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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드디어 아빠의 육아 웹툰이!! - <닥터앤닥터 육아일기>가 보여주는 아빠 육아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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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앤닥터 육아일기>

(글 그림 닥터베르 네이버웹툰 연재)


남자의 시선으로 낯선 육아 현실을 이해하려는 몸부림,

남성 육아가 말로만 장려되는 한국 사회에서 돌봄 노동에 뛰어들며 느끼는

부담감, 페미니즘이 시대정신이 되어 가고 있는 세상에서

부부 관계를 새롭게 만들며 느끼는 심정 등이 잘 담겨있다.



고백하건대 2015년 XTM에서 방송한 <수컷의 방을 사수하라>(이하 <수방사>)를 즐겨봤다. 고백

이라는 말을 쓴 이유는 이 프로그램이 부도덕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홈페이지를 보면 “남

자가 꿈꾸던 공간이 아내 몰래 현실이 된다! 집에 들어가도 할 것이 없는 남자, 화장실만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인 남자,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준 남자들이 ‘집’을 통째로 점령한 아내를 향한 대

공습을 시작한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젠더 이슈가 부상한 2019년에는 만들어질 수 없는 프로그램

이지만 그 이전에도 시청할 때 상당한 죄책감을 느꼈다.


제작진은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당구, 낚시 등 취미 생활을 접고 집에는 들어와 있는데 답답함을

호소하는 남자들의 의뢰를 받아 아내가 장시간 외출한 사이에 남자들이 원하는 취미 공간을 만들

어준다. 프로그램은 거실을 헐어내어 당구장을 만드는 과정과 아내가 언제쯤 돌아올지를 살피는

장면을 교차하며 긴장감을 만든다. 남자가 당구장으로 완벽하게 ‘빙의’한 거실에서 큐에 초크 질을

한다.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그때 MC들이 이제 아내가 곧 도착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면 얼굴이

순식간에 굳는다. 이 표정을 많이 봐왔다. 어릴 적 화장실에서 공예로 만든 성냥 덩어리에 불을 붙

이고 망을 보며 불타는 모습을 쳐다볼 때 그 표정이다.


당시 결혼생활 4년 경력의 나는 이 말도 안 되는 프로그램을 보며 묘한 쾌감을 느꼈다. 집에 들어

와 대충 옷을 던져놓고 침대에 한참 누워 있고 싶은데 그럴 수 없었다. 깨끗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

어야 쉴 시간이 주어졌다. 밥을 먹고 나면 TV를 보고 싶었지만, 접시가 쌓여 있는 싱크대로 가 고

무장갑을 껴야 했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방식으로 집안일을 하고 싶었지만, 아내는 항상 ‘지금’

하라고 했다. 집이 내 집 같지 않았다. 그런 마음을 품고 있으니 <수방사>가 일종의 일탈 대리만족

으로 느껴졌다.


아내는 이 프로그램을 보며 낄낄거리는 나를 보며 뭐라 하지 않았다. 그건 그렇게 불장난을 해도 언

젠가는 그런 것들을 멈추고 성장할 것이라는 어른의 마음이었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르며 차츰 사춘

기는 지나가고 그런 일탈의 감정이 얼마나 유치한지 깨닫게 된다. <수방사>는 집이 아내의 공간이

라 규정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아내에게 집은 파트너가 거의 ‘부재’한 상황에서 홀로 일상을

지켜야 하는 전투의 공간이다. 책임이 있는 곳에 권리가 생기는 것이고 그렇게 아내는 삶을 지탱하

며 낯선 공간을 자신의 집으로 만든다. 정작 무책임한 남자는 그 공간에서 결국 게스트가 될 수밖

에 없다. 손님은 결코 주인처럼 편안한 마음을 얻을 수 없다.


아내가 ‘지금’ 일을 하라고 주문한 것은 그 일을 미루게 되면 결국 그 일을 할 사람이 아내가 되기 때

문이다. 아내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집안일은 반반씩 하는 것이라 굳게 믿은 만큼 물러나지

않았다. 나는 논리적으로 동의하지만, 육체적으로 저항했다. 세상 무서운 게 습관이란 거다. 집안일

에 무지하고 무능한 자가 개조되는 데는 아주 긴 시간이 걸렸다. 나는 매일 집안일을 그래도 꾸준

히 해 나갔고 차츰 낯선 공간을 내 집으로 만들어 갔다. 그리고 그런 책임감 아래 신뢰가 생기니 천

천히 그리고 아주 조금씩 자유를 느꼈다.


육아의 영역도 마찬가지였다. 자연 출산을 하며 아내 옆에서 바싹 붙어 앉아 육아를 감당하다 보

니 엄마가 육아 능력자가 되는 건 호르몬의 도움을 받은 모성애가 아니라 나 아니면 저 아이 큰일

난다 싶은, 절박감에서 오는 책임감 때문이었다. 옆에서 낑낑거리며 육아도 해 나가면 아빠도 엄마

못지않은 달인이 될 수 있다. 육아의 과정에서 내가 열정적으로 아이들을 돌보는 모습을 보며 많은

이들이 칭찬해주고 격려해주었다.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라는 소리를 종종 들었다. 하지만 더 혹독

한 시간을 보내는 아내가 그런 대접을 받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모두가 당연한 일이라 했고 부족

하다 싶으면 나무랐다. 아내로선 억울한 일들이 많았다.


<수방사>는 남자가 답답함을 느낀다고 징징거리는 마음은 위로하면서도 정작 집안과 밖 어디에

도 내 공간을 허락받지 못한 아내의 삶을 위로하려 들지 않는다. 남자의 공간을 만들어주겠다는 제

작진은 아내의 ‘분노’를 누그러뜨리려 아이의 방을 더 예쁘게 꾸며주겠다는 되먹지도 않은 솔루션

을 내놓기도 한다. 이 프로그램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남자의 고통에 예민하며 여자의 고통에 둔감

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다. 나아가 상의하지 않고 중대한 결정을 독단적으로 내리는 방식은

가부장제가 작동하는 방식을 재연한다는 점에서 불쾌함을 낳는다.


그런데도 조금의 변명거리는 남아있다. <수방사>에서 남자들은 왜 아내의 말을 무시하고 취미 생

활을 위해 산과 들, 동네를 나도는 대신 집으로 들어와 무모한 작전을 시도했을까? 이 프로그램은

당위에 동의하면서도 그것에 부적응 하는 남자들의 과도기적 모습을 전제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프로그램은 사회적으로 유아기를 넘어 사춘기로 접어든 남자들에 대한 연민을 자극한다. 나의

아내는 집안일과 육아에 무능하면서도 뭐든 해보겠다고 끙끙거리는 남편을 동정했다. 답답함과

기특함이 성장 과정을 지켜보는 사람의 양면적인 감정 아니었을까?


남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집안일에 헌신하고 육아에 책임감을 느끼고 달려드는 일은 나름 전대미

문의 길이자 모험의 길이다. 선의가 충만해도 감당하기 어려운 난관도 기다리고 있다. 2017년에 나

는 육아휴직을 했다. 당시 막내를 낳아야 하는 아내 옆에서 5살, 3살 두 아이를 전담 마크해야 하는

육체적으로 혹독한 시간이었지만 정신적으로 혼란을 느낀 시간이기도 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

이 주는 낯섦을 받아들여야 하는 시간을 넘어 본격적으로 세상과 격리되어 무심히 흘러가는 시간

을 서늘하게 느껴야 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이렇게 살아도 될까? 응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거야….’

계속 자문자답했다.


<82년생 김지영>의 작가가 독박육아의 고통을 글로 쓰면서 치유했고 영화 속 주인공 역시 같은 방

식으로 치유의 길에 들어선다. 나를 표현한다는 것은 내가 누군지 알아가는 시간이고 그래서 어떻

게 살아야 나다운 것인지, 그리고 나답게 살기 위해 어떤 것을 감당해야 하는지 알아가는 시간이다.

나 역시 육아휴직 때 낯설고 답답하고 벅찬 감정들을 소화하고 싶어 몸부림쳤다. 브런치가 때마침

제안을 해줘서 매주 한 편의 육아 에세이를 인터넷에 올렸다. 바쁜 가운데 아내가 한 시간을 허락

하면 도서관에 가서 마음을 정신없이 쏟아내곤 했다. 얼마나 많이 생각했는지 말이 줄줄 흘러나왔

고 쓰고 나면 그렇게 홀가분해질 수 없었다. 그런 시간을 보낸 후 육아 에세이를 낼 기회도 얻었다.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실감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엄마 페미니즘 탐구 모

임 부너미에서 낸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를 읽으며 남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무거운 짐을

지며 돌봄 노동을 하는 기혼 여성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해 갔다.


내 고민이 기존의 답을 버리고 새 답을 찾는 과정이라면 엄마들의 고민은 답 없는 세상에서 답을

찾아내야 하는 과정이었다. 그 무게가 어떠하든 남자든 여자든 결국 마음속을 드러내고 써 내려가

야 살 것 같고 살 방법도 찾아내는 것 같다. 그렇게 각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답을

찾아가는 와중에 새로운 모습의 이야기가 우리 곁에 찾아왔다.


닥터베르의 웹툰 <닥터앤닥터 육아일기>는 남자의 시선으로 낯선 육아 현실을 이해하려는 몸부

림, 남성 육아가 말로만 장려되는 한국 사회에서 돌봄 노동에 뛰어들며 느끼는 부담감, 페미니즘이

시대정신이 되어 가고 있는 세상에서 부부 관계를 새롭게 만들며 느끼는 심정 등이 잘 담겨있다. 공

학박사로 현실을 논리적으로 설명해보려는 재치 있는 장면이 우선 관심을 끈다.


어떻게든 주어진 자극을 이성적으로 해석하려 시도할수록 그 모든 것이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

는 일이라는 것을 더 확인하게 되는 초반 이야기가 흡인력을 준다. 이 이야기가 진정성을 지니는

건 어느 아빠의 육아 구경기, 임시 체험기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육아에 깊이 들어가면서 느낄

수 있는 진한 경험들이 공감을 자아낸다. 그리고 ‘너만 힘드냐, 나도 힘들다’라며 고통의 등가성을

외치기보다는 ‘제대로 사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라는 담담한 고백을 품고 있어 웹툰 한구석에

슬쩍 앉아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를 기다리게 된다.


육아 환경에 놓일 때 끼적인 것들은 처음에는 남자라는 정체성에 기반을 두고 시작하지만 한참 시

간이 지나 육아에 푹 빠져 살면 사람으로 느끼는 일반 감정으로 수렴하게 된다. 이런 이야기가 등

장했다는 것은 아직 육아가 젠더 관점에서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는 의미이며 동시에 이제 그 간격

이 좁혀지기 시작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반가운 건 대중적으로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웹툰이라

는 형식으로 아빠 육아의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사실이다. 오랫동안 불모지인 남성 육아의 길이 더

빨리 더 번듯하게 닦일 것 같다. ◆


김신완 | 육아 에세이 <아빠가 되는 시간>의 저자. MBC PD.



*<지금, 만화> 제1호~제5호는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PDF파일을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